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23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 앞에 쌓인 경제 현안이 ‘첩첩산중’이다. 7박8일 간의 강행군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은 당장 25일 국회 제출을 앞두고 있는 추경안을 시작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법 개정 등 산적한 국내 경제 과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패싱’한 채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잠정 합의를 이루면서 국회가 올스톱된 만큼 논의의 물꼬를 트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전망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여야 4당 합의안이 발표된 직후 “선거제와 공수처를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순간 20대 국회는 없다”며 국회 보이콧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 원내대표의 말대로 한국당이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는 기약 없이 미뤄질 공산이 크다.
가장 시급한 것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다.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주52시간 근로제 계도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5월부터 주52시간 근로제 준수 여부를 단속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현재 여야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데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이룬 상태지만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4월 국회가 시작된 이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단 한차례의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 및 소위도 열지 못했다. 여기에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을 추인하기로 하면서 여야 간 대화는 한층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최저임금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 모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의 의견 차가 워낙 큰 탓이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을 막기 위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자는 입장이지만 한국당은 ‘최저임금 계산 시 유급 주휴 시간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각을 세우고 있다. 환노위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법 개정은 탄력근로제보다 급하지 않은 문제라 당장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내년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데에 여당도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인상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굳이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여야의 이 같은 대치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여야정 협의체’ 카드를 꺼냈지만 한국당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기 전 민주당 지도부에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개선 관련 법안을 꼭 국회에서 통과 시켜달라”며 “여야 합의가 어려우면 순방 후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하면 좋겠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선거제와 공수처 패스트트랙 지정 포기 및 인사참사 재발 방지’를 조건으로 내걸며 사실상 불참 의사를 밝혔다.
수출액·경제 성장률 등 각종 경제 지표의 하락세도 문 대통령에겐 큰 부담이다. 최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4월 1~20일 수출은 반도체 부진의 영향으로 297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8.7%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높고 자본시장 개방도도 높은 우리 경제 특성 상 수출 부진이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LG 연구원은 지난 21일 ‘2019년 국내외 경제전망’에서 올해 GDP 성장률을 작년 9월 전망치에서 0.2%p 낮춘 2.3%로 설정했다. 한국은행도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청와대는 혁신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비메모리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 분야를 ‘3대 중점 육성 사업’으로 선정해 범정부 차원의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언급했다. 다음 달 취임 2주년을 맞는 문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도 민생 경제 대책과 관련된 내용이 담기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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