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현지시간) 집권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은 가운데 이날 가장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역시 수행단의 면면이다. 이날 오후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 수행단에는 김평해·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리영길 군 총참모장 등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2월 김 위원장과 함께 베트남을 찾아 현지 경제시찰에 나섰던 오 부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이 이번에도 동행한 것이다. 오 부위원장은 북한의 국가 예산 및 경제정책을, 김 부위원장은 행정·경제관료 인사를 관장한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에 북한 측이 제재완화를 포함해 경제협력에 거는 기대치가 높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북한 대미외교의 핵심인 리 외무상과 최 제1부상이 동행했다는 점에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멈춰서 있는 핵협상에서 러시아를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는 북측의 노림수도 드러났다.
실제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면서 하산역에서 러시아 국영 TV 채널 ‘로시야1’과 단독인터뷰를 갖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질 정상회담에 대해 “지역 정세를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하고 공동으로 조정해나가는 데서 매우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짧은 답변이지만 각본 없는 인터뷰에서 즉석답변을 한 것은 꽤 이례적 일로 그만큼 이번 방러에 거는 김 위원장의 기대가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김 위원장은 “이번 방러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외신들도 이번 방러는 러시아를 통해 경제적 숨구멍을 키우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중국 봉황망은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만나 유엔 등 외교 무대에서 대북제재와 관련해 러시아의 도움을 얻으려 할 것”이라며 “대북제재 해제는 쉽지 않지만 러시아가 나선다면 미국의 추가 제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제재 국면을 돌파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러시아에 구애작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러시아가 북핵 대화판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극동 개발과 동북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중시하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좋은 기회이기는 하지만 양자 관계만으로는 미국과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뚫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방한 중인 애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이날 기자와 만나 “북한이 인도적 지원이라든가 북한 근로자의 러시아 체류 연장 등을 러시아 측에 요청하면 그 정도는 허용할 수 있겠지만 전 세계적 차원인 대북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경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100이라고 하면 러시아는 20 정도”라며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와 관련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반도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일종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그런 과거 전략을 다시 시도하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중 한 곳이고 나름대로 제재와 관련해 여러 문제에 발언권이 있는 국가”라며 “전혀 역할을 못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홍 실장은 “(북핵을) 북미 구도로만 남겨두면 미국이 긴장을 안 하고 내부 문제로 인해 협상 집중력을 잃을 수 있는데 러시아나 중국이 북미협상에 대한 지지, 환영 표명 등을 해주면 미국이 좀 더 협상에 집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25일 오후 1시(한국시간 12시)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의 극동연방대에서 단독회담과 확대회담, 공식 연회 등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26일 일대일로 정상포럼 참석을 위해 베이징으로 향하고 김 위원장은 하루 더 머문 후 오는 27일 이른 아침 귀환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영현·박우인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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