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개혁법’으로 불리는 신(新) 외부감사법이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감독당국은 이 법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주기적 지정제, 표준감사시간, 내부회계관리제도 등 주요 제도별로 이슈를 점검하고 개정 취지대로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인으로서 지난 2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발표한 표준감사시간은 여러 가지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계 투명성과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감사시간 증가가 필요하다는 데 반대할 기업과 감사인은 없을 것이다. 다만 기업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산출되는 감사시간과 그 근거를 제시해주기 바랐으나 발표된 표준감사시간은 그렇지 못했다. 공인회계사회가 1년8개월간의 시뮬레이션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처음 발표했던 표준감사시간은 이후 네 차례나 수정됐고 산출방식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검증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표준감사시간이 강제규범이 아니라고 지적한 데 이어 감사인이 개별기업의 감사시간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표준감사시간만을 근거로 감사보수 인상을 요구하는 행위를 엄정 제재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례로 기업이 고유의 특성 때문에 표준감사시간을 조정해줄 것을 감사인에게 요구해도 감사인이 공인회계사회의 징벌을 이유로 기업의 요구를 반영하기 곤란하다며 계산된 표준감사시간 수용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표준감사시간 제도가 별문제 없이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는 회계 업계의 주장은 성급한 결론이다. 감독당국은 앞으로 감사보수와 시간·인력에 관한 사항 등을 분석해 공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발표될 공시 결과를 제대로 살펴본 후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특히 감사인이 표준감사시간을 준수하지 않을 때 공인회계사회 회칙에 따라 벌칙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표준감사시간이 의무사항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감독당국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따라서 표준감사시간이 본연의 역할에 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당국의 적극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적어도 3년 이내에 표준감사시간제도가 시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공인회계사회가 객관적 검증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표준감사시간 모형을 제3자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표준감사시간을 제정 또는 개정할 때 절차적인 보완책도 마련돼야 한다. 법정표준감사시간심의위원회의 회의 진행절차와 의결과정 등이 관련 법령 및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공인회계사회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금융감독원과 기업 등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는 등 공정성과 신뢰성이 담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 공인회계사회의 영향으로부터 보다 독립적인 위원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표준감사시간 제·개정안에 대해서도 감독당국의 승인 권한을 두는 등 견제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표준’이란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것으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감사계약 시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임을 전제로 공정한 표준감사시간을 마련했다면 시행착오가 줄고 기업도 큰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 제시됐을 것이다.
이제라도 표준감사시간으로 파생되는 소모적인 대치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표준’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합리적인 표준감사시간을 제시하고 과다한 감사보수 인상 요구를 자제하게 해야 한다. 기업과 감사인 모두 본업에 집중함으로써 기업 가치 향상과 함께 회계 투명성 및 감사 품질 제고로 윈윈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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