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은 서울시가 한양도성 성곽마을 조성사업을 앞세워 주민들이 추진해온 재개발사업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제한 결정에 대해 법원에서 명확하게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라는 사유는 재개발 추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못 박았다. 서울시가 도심지역에 대해 ‘보존’을 핵심가치로 두고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해당 주민들의 동의를 제대로 구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재산권이나 주거권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행정조치가 상위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뛰어넘는 불법이라고 적시한 것도 서울시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러잖아도 서울시의 무리한 재개발·재건축 정책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을지로·청계천 재개발사업은 노포 보존계획을 둘러싸고 수차례 뒤바뀌는 소동을 벌였고 광화문광장 재조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서울에서 재개발을 시행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에 따라 임대주택 의무비율이 최대 30%까지 높아져 사업에 차질을 빚을 지경이다. 게다가 재건축사업은 겹겹 규제에 묶여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오죽하면 강남구 압구정 3구역 주민들이 재건축 잠정중단을 자청하고 나섰겠는가.
도심 재개발사업은 ‘기억과 역사에 남을 도시’를 만들겠다며 무조건 보존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주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차제에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주거환경과 주택공급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서울시의 도시재생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보완과 재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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