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20세기 초 영국에서 가난 논쟁이 거세게 일었다. 유럽을 뒤흔든 사회주의의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았던 영국에서 빈부격차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지성인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보수당 정부는 눈을 감았다. “가난은 게으름과 음주·도박의 소산이기에 국가가 돌볼 필요가 없다”던 보수당은 1905년 빈곤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단을 꾸렸다. ‘보어전쟁에 투입된 병사의 절반이 영양실조 상태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다.
조사단은 두 개의 보고서를 올렸다. 다수의견은 전통적 견해와 같았다. 소수의견은 정반대였다. “불평등과 질병, 일자리 부족이 가난을 심화시켰다. 빈부격차의 구조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유권자들은 소수의견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보수당은 1906년 선거에서 처참하게 패했다. 빈부격차 해소를 내걸고 11년 만에 권력을 잡은 자유당은 바로 재정 한계에 맞닥뜨렸다. 상무장관을 지내다 1908년 내각의 2인자 격인 재무장관직에 오른 로이드 조지는 복지확대를 위한 과감한 세제개편 및 예산증액을 밀고 나갔다.
조지의 핵심정책은 빈민 감세와 부자 증세. 소득에 따른 누진세율을 강화하고 상속세도 높였다. 부유층과 보수당이 거세게 반발해도 조지의 ‘국민예산(People‘s Budget)’안은 하원을 가볍게 넘었다. 귀족층이 장악한 상원의 반대에 부닥치자 자유당 정부는 의회해산과 재선거라는 초강수를 뒀다. 전 국민을 세금과 재정 전문가로 만들 정도로 떠들썩한 선거에서 자유당은 의석 2석을 잃었다. 우호정당인 노동당의 의석도 줄었지만 나머지 군소정당이 활약한 덕분에 자유당의 권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결국 상원도 1910년 4월28일 ‘국민예산’을 받아들였다. 국민예산안의 승리를 이끈 세 명의 드림팀은 재무장관 조지와 33세의 상무장관 윈스턴 처칠, 변호사이자 경제학자였던 윌리엄 베버리지(30). 사상 최초로 부의 재분배를 위해 편성된 국민예산은 복지에 쓰였을까. 팽창된 예산은 복지보다 1차 세계대전에 빨려 들어갔으나 그 정신은 죽지 않았다. 드림팀의 일원인 베버리지의 주도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작성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오늘날 영국은 물론 유럽 복지국가의 모범 참고서다. 국민예산안 통과 110주년. 마르틴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존재는 시공간을 넘는다. 묻고 싶다. 우리에게 존재가 있는지. 드림팀과 양심적 지식인, 현명한 유권자라는.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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