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500만달러(약 290억원)의 현상금을 내건 ‘이슬람국가(IS)’ 최고지도자가 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 서방과 기독교에 ‘복수’를 다짐하고 나서 전 세계에 ‘테러주의보’가 내려졌다. 글로벌 국제동맹군의 공세로 모든 점령지를 상실하면서 궤멸한 것으로 여겨졌던 IS가 건재를 과시한 ‘칼리프(이슬람제국 통치자)’를 구심점으로 조직 재건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29일(현지시간) IS 미디어 조직 알푸르칸은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메시지라며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이 AK47 소총을 옆에 두고 앉은 채 발언하는 모습이 담긴 18분짜리 영상을 유포했다. 알바그다디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14년 7월 이라크 모술 소재 알누리 대모스크의 설교 모습이 공개된 후 5년 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국가들이 아직 이 영상의 공식적인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있지만 대테러 전문가들 대부분은 진짜라는 결론을 냈다”고 전했다.
영상이 제작된 장소와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상 앞부분에 텍스트로 ‘4월 초’라는 시기를 밝혔고 영상과 함께 공개된 오디오 음성에서 알바그다디가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부활절 테러’를 언급한 점을 비춰 최근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IS 최고지도자이자 IS 이데올로기의 상징적 존재인 알바그다디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에서 IS를 지휘하고 미국·영국·일본 등 서방 인질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주모자다. 이라크와 프랑스·벨기에 등지에서 각종 테러를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11년 그를 테러범으로 공식 지정하고 1,0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이후 그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자 현상금을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최고 2,500만달러까지 올린 상태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델타포스·네이비실) 등 미군 특수부대도 그를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알바그다디는 최근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부활절 테러가 시리아 바구즈 전투의 복수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IS는 지난달 시리아 동부의 마지막 소굴인 바구즈 전투를 끝으로 본거지 시리아·이라크에서 모든 점령지를 상실했다. 그는 “바구즈 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스리랑카에서 형제들이 부활절에 십자군의 자리를 뒤흔들어 유일신 신앙인(IS 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마음을 달랬다”고 치하한 뒤 “이는 십자군 앞에 놓인 복수의 일부분”이라고 밝혀 기독교를 상대로 한 보복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미군 공습으로 인한 ‘사망설’까지 나왔던 알바그다디가 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두고 외신과 전문가들은 IS의 건재와 활동의 글로벌화를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 시절 백악관 대테러 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조슈아 겔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상으로 IS가 진정으로 패하지 않았다는 점을 추종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도 과거의 빈라덴같이 영향력이 큰 지도자가 했던 것처럼 IS 조직과 추종자들에게 구심점이자 공격동기로 작용할 수 있는 영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바그다디는 또 이번 영상에서 IS가 국제조직화하고 있다고 강조해 전 세계가 테러 영향권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영상에서 알바그다디는 벨기에와 호주·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있는 전투원과 그룹 지도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물리적 기반을 잃은 IS가 중동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 가담자 가운데 최소 1명이 과거 시리아에서 폭탄 제조 등 IS의 훈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WSJ는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점령지를 잃고도 여전히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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