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그룹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가 아키히토 일왕 퇴위에 맞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의 손녀는 “사나의 경솔한 행동에 책임지고 사죄하라”며 장문의 글을 박진영 프로듀서 앞으로 남기기도 했다.
1일 현재 사나의 일왕 퇴위 심경글을 둘러싸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날(30일) 사나는 트와이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일본어로 짤막한 글을 남겼다. 사나는 “‘헤이세이’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수고 많았습니다”고 적었다. 이어 ”‘레이와’라는 새로운 스타트를 향해 헤이세이 마지막 날인 오늘을 시원한 하루로 만듭시다“라고 썼다.
이날은 1989년 일본 왕위에 올랐던 제125대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 의식이 열린 날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퇴위식을 끝으로 왕위 자리에서 물러났다. 헤이세이 시대도 막을 내렸다. 뒤이어 1일 나루히토 새 일왕이 즉위, 레이와 시대가 막을 올렸다.
일부 누리꾼들은 사나가 한국 계정에 이 같은 글을 게재한 데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트와이스가 사나 등이 포함된 한일 멤버 구성 그룹이긴 하지만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한국 아이돌 스타이며 사나가 글을 올린 계정이 한국 계정인 것을 언급하며 높은 강도로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난 3.1운동 100주년 때는 많은 연예인들이 이를 기념하는 글을 게재했지만 트와이스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알려지며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누리꾼들은 ”아이러니하다“고 비판했다.
사나에 대한 논란이 커짐에도 JYP는 별다른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나의 게시글에 대한 비판 댓글을 삭제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사나 이후 같은 멤버인 다현이 영상을 올렸다 분위기를 의식한 듯 삭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존재한다. 이번 논란에 대해 “지나친 비약”이라는 해석까지 나오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자체 연호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논란이 된 사나의 글은 ‘일왕 교체에 대한 심경’이라기 보다 일본이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그리고 새 시대를 향한 기대를 나타내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일왕 옹호 입장’이라며 비난을 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해석이다.
사나의 글이 논란이 되자 한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의 외손녀라고 밝힌 이가 “사나의 경솔한 행동에 책임지고 사죄하라”며 장문의 글을 박진영 프로듀서 앞으로 남기기도 했다. 최장섭 씨는 일제 강점기였던 1943년 16세의 나이에 군함도로 강제 징용됐던 인물로 20여 년 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강제징용 생활을 기록하고 알리는데 힘썼다. 최장섭 씨는 지난해 1월 부상과 지병으로 별세했다.
다음은 일본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 최장섭 씨의 외손녀가 남긴 글 전문이다.
”박진영씨, 저는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 최 장자, 섭자 씨의 외손녀라고 합니다. 이 댓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트와이스 멤버 사나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로 인해 박진영씨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아주 절박한 분노를 담아 이 댓글을 달아봅니다.
할아버지께서 별세하신지 이제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살아 생전 메스컴과 각종 행사에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나오셔서 강제징용 피해 사실을 꿋꿋히 알리시고 일본에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시며,
거동이 불편하신 몸으로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날조된 역사 아래 등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맨 몸으로 배에 올라타 끔찍했던 자신의 과거가 묻힌 군함도에 다시 다녀오시기도 했던 저희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현재 사나 씨가 올린 글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 조차도 죄스러운 것이 제 심정입니다.
할아버지께 숙원처럼 남은 일본의 만행들은 그 어떤 사과와 보상도 없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인이 나고 자란 시대에 대한 경의, 세대가 교체되었다는 쓸쓸함은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이 가져야 할 감정입니다. 전범국 국민이 자랑스럽다는 듯 가질 감정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 군국주의 아래, 어린 10대였던 제 할아버지께서는 저와 박진영씨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치욕을 겪으셨습니다. 일본 군국주의 아래 어떤 소녀들은 자신들이 그렸던 행복한 미래와 영원히 이별해야 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 아래 한국은 정체성을 잃고 이름을 잃고 가족을 잃고 한글을 잃고 땅을 잃고 곡식을 잃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군국주의란 그런 것입니다.
군국주의를 추앙하는 일본의 우익세력 때문에 미군정 아래 금지됐던 연호가 일본에서 다시 부활했습니다. 1979년 일본이 패망한지 34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 일왕이 친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이어오고 있는 군국주의적 역사를 한국에서 프로듀싱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멤버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낍니다.
제가 강제 징용 피해자분들을 대표할 순 없다 생각합니다. 제가 감히 할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드린 것은 단지 후손이란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저 또한 한 인간으로서, 수 많은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진영 씨께서 연습생들을 훈련시키며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인성이라 들었습니다. 바른 인성은 바른 도덕심과 바른 역사적 가치관을 가졌을 때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나 씨를 프로듀싱한 제작자로서 박진영 씨가 이번 일에 느끼는 바가 정말 단 하나도 없으신지 저는 묻고싶습니다.
몇 년 전 광복절 행사에서 저희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후손들이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저 잊지 않으려는 사람으로서, 박진영 씨께 간곡히 바랍니다. 아이돌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가르칠 것. 역사 위에 자본을 두지 말 것.
사나 씨가 한 경솔한 행동에 핵심 프로듀서, 소속사 창립자로서 책임 지고 사죄할 것.
부디 박진영 씨가 올바른 소신을 가진 사람이길 믿겠습니다.“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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