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일 사회 원로들과 함께한 오찬간담회에서 지난달 있었던 경제계 원로들과의 만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쓴소리들이 쏟아졌다. 원로들은 통합과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진상규명’과 ‘청산’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또한 국회의 극렬한 대치 상황, 탈원전 정책,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한 원로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간담회 직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여야 극한대결 상태로 지속되면 결국 집권 중반부를 맞은 대통령이 성과를 낼 수 없게 된다고 대통령께 간곡히 조언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의 노력만으로는 힘들고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정국을 푸는 데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인사 문제에 대한 직언도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김우식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다.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이사장은 탈원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탈원전이라는 명칭보다 에너지믹스, 단계적 에너지 전환으로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우리는 우수한 기술경쟁력을 갖고 있다. 보다 관심을 갖고 기술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찬에는 윤 전 장관과 김 이사장을 비롯해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등이 초청됐다. 또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조은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 학계 인사들이 오찬을 함께했다. 법조계에서는 김영란 전 대법관과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지형 전 대법관 등이 참석했다.
중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송 교수는 촛불 민심 왜곡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송 교수는 “촛불에 참여한 시민들은 광장에 나왔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사회가 매개체 역할을 해줘야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다”며 “그 시민사회의 역할을 노조가 하고 있다. 여기서 오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의 입김에 휘둘리는 정부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이다.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김명자 회장은 “요즘 뉴스를 보지 않고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이는 국가적 불행”이라며 “모든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어떻게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끌지’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고 고언했다. 진보·보수 이분법으로 대치된 사회·정치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이 전 원장은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레이와 시대로 바뀌는 등 새로운 전환점을 찾고 있다”며 “일부 일본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부분이 보이지만 국왕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하고 아주 좋은 외교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과거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파생되는 문제들이 나오고 있고 그것 때문에 양국관계가 때로는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부분 때문에 양국 관계의 어떤 근간이 흔들리지 않게끔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요즘은 일본이 그런 문제를 자꾸 국내정치에 이용을 하면서 문제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주 아쉽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한 적폐수사 중단, 협치 문제와 관련해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공감한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을 텐데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그 자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나 시각이 다르니까 그런 것에 어려움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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