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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살계취란’의 경제정책

정부만능주의에 빠진 文정부 2년

일자리 만들자고 기업 팔 비틀어

당장 배고프다고 닭의 배 가르면

3~5년 뒤에는 무얼 먹고 살건가

오철수 논설실장




중국 전한(前漢)의 7대 황제 무제(武帝)는 말년에 무리한 영토 확장과 궁궐 신축으로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해결책을 모색했다. 한무제가 고심 끝에 찾아낸 재정정책은 소금과 철의 전매권을 국가가 회수하는 것이었다. 소금과 철의 전매 수익은 상당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재정 충당이 여의치 않자 한무제는 균수법과 평준법까지 동원했다. 물가조절을 명분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지역·계절에 따른 상품 가격 차이를 이용해 국가가 재정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한나라가 시행한 정책들은 민간 상인이 해야 할 역할을 국가가 대신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의 곳간을 채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인의 몰락이라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결국 한나라 경제는 무제 사후 원제·성제·애제에 이르는 기간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눈앞의 성과에 급급하다 장기적 이익을 희생시킨 이른바 ‘살계취란(殺鷄取卵)’의 잘못을 범한 것이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자고 닭의 배를 갈라버렸으니 어떻게 알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이는 2,100년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는 10일로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을 맞는다. 지난 2년간 경제정책을 보노라면 살계취란의 과오를 범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무릇 정책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잘 돼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나서 해결하려고 과욕을 부리고 있다.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일자리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고용을 확대해 소득과 소비 기반을 늘려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혈세를 동원해 공공부문 채용확대에 나서고 있다. 5년 동안 채용할 공무원 숫자만 17만5,000명에 달하고 전국 853개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 숫자만 무려 20만5,000명이다.

문제는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채용확대와 정규직 전환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일단 일자리 숫자를 늘려보겠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압박을 받게 되면 기업은 일단 하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법인세 인상 등으로 가뜩이나 이익이 줄어드는 마당인데 어떻게 계속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겠는가. 그러잖아도 산업현장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등 때문에 온갖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정책을 보노라면 당장의 성과를 내기에 급급할 뿐 몇 년 뒤 나라 경제는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것이 닭의 배를 갈라 알부터 꺼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무리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후유증을 동반한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음에도 2년간 일자리 성적표는 한심하다. 이 정부가 출범하기 전만 하더라도 매년 취업자 수가 30만~40만명씩 늘었지만 문재인 정부 2년째인 지난해 취업자 수는 고작 9만7,000명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5%를 넘어서면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일자리 정부라는 구호가 무색할 지경이다. 오죽했으면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낙제점을 줬겠는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만들어 낸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말 퇴임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젊었을 때는 무지개가 있다고 믿고 좇았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서 보니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소득주도성장정책이 허상이었음을 뒤늦게 실토한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 정권이 앞으로 남은 3년의 기간에도 실체가 없는 무지개를 좇느라 허송세월하면 우리 경제는 정말 벼랑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잖아도 올해는 각국의 성장률 전망이 곤두박질치면서 글로벌 경제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우리의 경쟁국들이 감세 등을 통해 기업 기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경기 침체를 막아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정부가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쥐어짜기만 한다면 성과는커녕 경기 침체의 골만 깊어지게 할 뿐이다. 정부가 진정 일자리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살계취란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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