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직생활 30년을 맞은 정종제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고향에서 경험했던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정 부시장은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운기와 그랜저를 교훈 삼아 지나온 공직 30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정 부시장은 “어느덧 인생 3·3·3 중 두 번째 3을 지나고 있다”고 글을 시작했다.
90세를 기준으로 할 때 첫 30년은 학업과 취업 준비, 두 번째 30년은 직장생활, 마지막 30년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으로 비유했다.
이 글에서 정 부시장은 1988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고향인 전남 완도군 노화도에서 열린 마을잔치에서 경운기와 그랜저에 얽힌 일화를 털어놓았다.
당시 노화도 이목항에 정 부시장이 도착하자 마을 청년들이 경운기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죽마고우 중 한 명이 “종제야! 우리 경운기 카퍼레이드 한 번 하자”는 말에 감격해 경운기에 올라탔다.
경운기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읍내에서 건설업을 하는 형의 친구가 “마을 어른들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느림보 경운기로 언제 가겠느냐. 얼른 그랜저로 옮겨 타라”고 말했다.
얼떨결에 그랜저로 옮겨탄 정 부시장은 마을 어른들의 환호와 축하 속에 잔칫상을 받았다.
30여 분쯤 후에 빈 경운기를 몰고 마을회관에 도착한 청년들은 후미진 구석에서 자리를 잡았다.
정 부시장은 다음 날 육지를 향한 배 안에서 멀어져 가는 부둣가를 보면서 전날의 상황을 되새김하며 후회스러운 감정을 토로했다.
정 부시장은 “빈 경운기를 털털털 몰고 마을회관에 나타난 청년들의 허탈한 표정, 그들의 소박한 정성이 거부됐을 때 느꼈을 마음의 상처 등등, 송구한 마음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고 적었다.
정 부시장은 그 순간 ‘그래, 이러한 후회를 교훈으로 삼자’는 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퇴직할 무렵에는 결코 후회되는 공직생활이 되지 말아야 한다”며 “정책 결정의 순간순간마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은 자가 부당하게 압력을 가하더라도 말 없는 서민들, 평범한 시민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직 30년을 보낸 이 시점에서 지난 공직생활을 돌이켜볼 때 후회되지 않고 적지 않은 보람이 느껴지는 것은 ‘경운기와 그랜저’가 가져다준 교훈 덕택이다”며 “그때 경운기를 몰고 부두까지 마중 나왔던 동네 청년들에게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글을 맺었다.
광주 인성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정 부시장은 최근 소설로 읽는 프랑스 예술기행 ‘파리에서 온 이메일’을 발간하기도 했다.
/광주=김선덕기자 s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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