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로 저녁에 여유가 생긴 직장인 A씨는 최근 새로운 술맛에 빠졌다. 회식자리에서 자주 마시는 소주와 맥주가 아닌 양주, 그중에서도 위스키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 제대로 즐기기 위해 위스키를 공부하는 것은 물론 함께 좋은 술을 음미하는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스피릿’이라고 불리는 위스키의 주정(酒精)이 정말 영혼의 단짝처럼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좋은 술을 권하는 사회의 최전선에는 양주의 대표격인 위스키가 있다. 과거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를 제조하기 위해 첨가됐던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가 가고 싱글몰트가 새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말 그대로 ‘하나’의 양조장에서 만든 몰트 원액을 숙성시켜 만든 술을 말한다. 맥아만 원료로 사용하고 다른 증류소의 원액과 섞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대신 맛과 향이 뛰어나다. 실제 주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싱글몰트 위스키의 출고량은 전년 대비 4.7% 증가했다. 전체 위스키 시장이 재작년 기준 출고량 약 150만상자로 지난 2008년(284만상자) 대비 절반 수준으로 고꾸라진 점을 고려하면 싱글몰트 위스키만 인기를 끄는 상황이다. 국내 식문화가 ‘파인 다이닝’이라는 말과 같이 고급화된 것처럼 싱글몰트 위스키가 ‘파인 드링킹’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인 드링킹은 말 그대로 잘, 건강하게, 맛있게, 멋있게 술을 마시자는 의미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동호회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워라밸’ 분위기에 편승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위스키 클래스는 물론 좋은 바를 함께 방문하는 모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문토’를 비롯한 다양한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회원을 모집하는 위스키 모임에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리더’가 있고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멤버로 활동할 수 있다.
최근 위스키 모임에 새로 가입한 한 직장인은 “싱글몰트 위스키의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동호회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준다”며 “바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두어 병의 위스키를 나눠 마시면서 품평회를 하는데 회식자리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싱글몰트의 인기에 편승해 주류 업체들이 관련 가격 상승에 나선 점도 비싼 위스키를 함께 마시는 동호회의 인기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을 국내에 수입 판매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제품 가격을 최대 약 8% 인상했다. 맥켈란 등 다른 싱글몰트 업체들도 가격을 올리고 있어 직장인 입장에서는 혼자 한 병을 사서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위스키 동호회와 반대로 혼술을 즐기는 위스키족에게는 ‘홈바’라는 꿈이 자라고 있다. 편의점의 ‘네 캔 만원’이 혼술족 양산에 불을 지폈다면 위스키는 물론 칵테일까지 제조하는 홈바는 혼술족의 끝판왕들이 실현하는 꿈이라는 설명이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조명한 ‘나 혼자 산다’에 나온 개그맨 박나래의 ‘나래바’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혼술족을 겨냥한 홈 데코 시장이 커지면서 홈바도 진화하고 있다. 가구 업계 관계자는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에서 ‘홈바’와 ‘홈카페’ 열풍이 불고 있다”며 “가구 업체 입장에서는 드물게 새로 개척되는 시장이어서 앞으로 홈 전용 바 테이블은 물론 전자기기 업체들과 협업해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위스키와 같은 고도주는 남성만 마신다는 편견도 점차 깨지는 분위기다. 위스키는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않더라도 탄산수와 섞어 ‘하이볼’로 마시거나 진저에일·소다와 함께 마시는 등 시음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주류 업계는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과 음식점을 중심으로 시음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2030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모션 마케팅도 늘리고 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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