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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그땐 그랬지…충격의 ‘1988 북한-콜롬비아 기습수교’

이낙연 총리 공식 방문한 콜롬비아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6·25참전

88년 뉴욕채널 통해 北과 몰래 수교

"우리 사이에 어떻게"…韓외교 충격

그땐 살만했던 北의 '원조 공세' 탓

이 총리 "곡절 있어도 평화로 갈 것"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 엘도라도 국제공항에 도착해 도열병을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에 도착했습니다. 총리 취임 이후 가장 긴 순방인 9박 11일 일정 중 세 번째 방문국입니다. 쿠웨이트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날 보고타에 도착,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순방 일정에 돌입했습니다.

콜롬비아는 한국 기준으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서울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까지 직선거리만 1만4,825km에 달합니다. 그래도 한국과는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콜롬비아는 6·25전쟁 때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한국을 돕기 위해 파병을 했었습니다.

◇중남미 유일 6·25참전국…강원 고지 지켜

콜롬비아는 당시 프리깃함 1척과 연인원 5,314명을 파병했습니다. 이들은 부산 상륙 후 강원도 화천과 철원, 연천, 금성, 양구, 인제 등으로 이동하며 ▲570고지 전투(51.10.13) ▲400고지 전투(52.6.21) ▲ T-Bone 전투(53.1.25) ▲불모고지 전투(53.3.23) 등을 치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213명이 목숨을 잃고 567명이 다쳤습니다. 28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곧바로 떠나지 않고 한국 해역에서 활동하다가 1955년 10월에야 전원 귀국했습니다.

‘카리브 해의 정기를 타고난 용사들’이 극동의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먼 바다를 건너 와줬던 데 대한 감사함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1951년 10월 금성계곡이 보이는 산마루를 지키고 있는 제24보병사단 소속 콜롬비아 대대./사진자료=전쟁기념관 홈페이지


◇‘전우’ 콜롬비아…북한 손도 잡다

하지만 이런 콜롬비아가 한국을 충격에 빠뜨린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콜롬비아가 북한과 수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한국 외교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한국과 치열한 외교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1988 하계 올림픽 서울 유치에 성공하자 북한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동유럽 우호국들을 대상으로 올림픽 불참을 종용하는 등 극렬한 훼방 작전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1987년 11월에는 KAL 858기 폭파 사건까지 터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만행 알리기에 나섰고, 국제 사회 역시 북한을 비난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이 북한과 단교하자 이를 한국 외교의 작은 승리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10월 한국 외교가에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한국 단독 수교국이었던 콜롬비아가 북한과 수교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 사실을 우리 정부는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닌 북한 평양중앙방송의 보도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북한-콜롬비아 수교에 대한 1988년 외교부 문서./외교부 제공


◇北, ‘경제 지원’ 미끼로 수교 제의 추정

6·25전쟁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국가인데다 1987년 콜롬비아 대통령이 방한해 극진한 환대를 받고 간 직후여서 우리 정부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콜롬비아 측에 유감을 표했고, 주콜롬비아 한국대사는 “(한국 측에) 일체 통보가 없었던 것은 ‘mistake’(실수)였다”며 “수교 사실은 외무장관도, 대통령도 알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식으로 해명했습니다. 유엔주재 콜롬비아 대사가 본국과 연락 없이 자의적으로 진행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과 콜롬비아의 수교 배경에 대해 북한이 콜롬비아에 무리해서라도 원조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콜롬비아는 빈곤퇴치와 사회·경제개발 등이 최대현안이었기에 이에 대한 협력을 북한이 제안했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실제 콜롬비아는 장기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은 3일 올해 북한의 식량 수요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곡물 수입량이 136만t이라고 발표했다. 사진은 공동 조사단이 4월 황해남도의 배급소를 방문한 모습./사진제공=FAO·WFP




◇베풀던 나라에서 쌀도 부족한 국가 된 북한

외교부의 이 같은 추정은 북한의 당시 외교 행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내 편 만들기’를 위해 군사, 건설, 농업 원조 등을 미끼로 수도 없이 내걸었습니다.

그 시절 북한이 우간다,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세워준 박물관이나 체육시설 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북한은 군사, 건설, 농업 기술자들을 현지로 파견하고, 시멘트, 무기, 종자 등을 원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현재, 북한의 처지는 곤궁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에도 동부전선 방어 부대를 찾아가 화력 타격 훈련을 지도하고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 수 있게 전투력 강화를 위한 투쟁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오늘 한 끼’가 더 걱정입니다.

2018년 7월 케나 나이로비에서 한국이 아프리카 지역에 무상 제공한 쌀을 둘러보는 이낙연 총리. 한국은 원조를 받다가 주게 된 세계 유일의 국가다./연합뉴스


◇‘고난의 행군’ 다시 언급하면서도 핵은 놓지 않아

지난 3일 유엔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현재 식량 사정은 최근 10년 사이에 최악입니다. 긴급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로부터 136만t의 식량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북한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1,010만 명의 식량이 부족한 상태로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셈입니다.

실제 북한 매체들은 요즘 들어 ‘쌀이 금보다 귀하다’ ‘곡물 심을 땅을 무조건 찾아라’ 등의 구호와 함께 과거 ‘고난의 행군’을 자꾸 언급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 제재로 인해 곤궁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노력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 이상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은 쉽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콜롬비아 보고타의 ‘한-콜롬비아 우호재활센터’ 앞마당에 마련된 한국전쟁 전사자 추모비./연합뉴스


◇이 총리 “韓 위한 콜롬비아 희생 감사…가야 할 길은 평화”

상황이 이런 이상 콜롬비아도 이제는 경제 성장의 파트너로 당연히 한국을 바라봅니다. 콜롬비아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은 현재 세계 12위권 경제대국입니다. 이 총리가 콜롬비아에서 환영 받는 이유 도 여기 있습니다.

이 총리는 현지에서 동포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준 분들께 우리 정부와 국민이 충분할 만큼 보답해드리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콜롬비아의 참전을 잊지 않겠단 뜻입니다.

또 이 총리는 북한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 정부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 북한 또한 그에 동참하리라고 굳게 믿는다”며 “곡절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평화와 공동번영이고, 그것을 위한 당연한 과정은 비핵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총리의 콜롬비아 방문길에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소식이 터지면서 한국과 북한, 콜롬비아 간의 인연이 괜히 떠올랐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통령이나 총리가 외국을 방문하면 한국의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한국은 이제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국가가 됐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손도 편하게 잡아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물론 북한의 핵 위험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게 전제 조건입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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