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 4)이 지난 4일 개봉 11일 만에 1,000만 고지를 밟은 데 이어 6일 오후 1시 현재 누적 관객 1,141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최고의 흥행작인 ‘명량’(총 1,761만명)이 개봉한 지 만 13일 만에 1,133만명을 불러 모은 것보다 더 빠른 속도다. ‘명량’은 1,000만 관객 돌파에도 12일이 걸렸다. 또 ‘어벤져스 4’는 시리즈 전작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1,121만명)의 기록을 깨며 마블 스튜디오 영화 중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이 영화는 세계 극장가의 흥행사도 새로 쓰면서 글로벌 매출이 벌써 2조원을 넘어섰다. 외화 최고흥행작인 ‘아바타’(1,334만명)를 누르고 내심 1,500만 관객 이상을 노리는 ‘어벤져스 4’ 열풍의 원인을 키워드로 정리해 분석했다.
◇시리즈 전작보다 한결 친절한 내러티브=‘어벤져스 4’가 전편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기록을 일찌감치 뛰어넘은 요인으로는 액션·유머에 감동까지 장착한 서사가 첫손에 꼽힌다. 이 영화는 마블 스튜디오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한층 친절한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곳곳에 마블의 역사를 훤히 꿰는 관객만 이해할 수 있는 유머와 디테일이 등장하지만, 서사의 큰 그림은 전편을 보지 않아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짜였다.
대중성을 확장하는 화룡점정은 한국 관객들에게 언제나 먹히는 ‘감동 코드’다. 상실과 부재의 쓰라린 아픔을 겪은 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손을 맞잡는 영웅들의 모습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쾌감을 만끽하러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적시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로맨틱하면서도 감미로운 결말은 마블의 고정 팬이 아닌 일반 관객도 끌어모으는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무주공산 싹쓸이에‘N차 관람’ 열성 관객도= ‘어벤저스 4’의 기록적인 흥행에는 마블 스튜디오가 오랜 기간 공들여 구축한 배급 전략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5월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극장가에서도 여름휴가나 겨울방학 시즌과 비교해 관객이 한산한 비수기로 분류된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관객이 폭발적으로 몰리는 성수기에 다른 경쟁작들과 파이를 나눠 먹는 대신 대작들이 뜸한 비수기에 홀로 출격해 극장가를 평정하는 전략을 택했다.
특히 이 영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먼저 봐야 할 징검다리 작품으로 인식된 ‘캡틴 마블’이 3월에 개봉해 570만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한결 수월하게 극장가를 공략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비수기를 집중적으로 노려 안정적인 흥행 체계를 구축한 것은 마블 스튜디오이기에 가능한 독보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열성 관객들의 반복 관람도 영화가 흥행 스퍼트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개봉일인 4월24일부터 5월1일까지 CGV에서 ‘어벤져스 4’를 관람한 전체 관객 가운데 6.2%는 이 영화를 두 번 이상 본 사람이었다. 시리즈 전편인 ‘인피니티 워’의 경우 개봉 후 8일 동안의 재관람률은 ‘어벤져스 4’보다 낮은 5.0%였다.
◇스크린 독과점 이어 =물론 국내 극장가를 사실상 홀로 잠식한 스크린 독과점 덕분에 폭발적인 흥행이 가능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어벤져스 4’는 개봉 첫주 줄곧 80% 안팎의 상영 점유율을 보였으며 3주차에 접어든 지금도 58%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의 압도적인 상영관 숫자와 회차는 의도와 상관없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어벤져스 4’가 거침없는 속도로 관객을 빨아들인 개봉 첫 주말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일일 관객 수가 모두 1만명 미만에 머물렀다. 지난 5일에도 박스 오피스 2위인 신하균 주연의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가 동원한 관객은 약 17만명에 불과했다.
정 평론가는 “할리우드가 있는 북미에서도 ‘어벤져스 4’의 상영 점유율은 15% 수준밖에 안 된다”며 “영화 한 편이 전국 극장가를 뒤덮은 상황은 법적 규제를 통해서라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