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신뢰논란에 빠져들고 있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이 전례 없이 높은 동의를 받으면서 매크로 프로그램 동원 의혹이나 북한 배후설 같은 색깔론까지 불거지는 모양새다. 국민들이 거름망 없이 직접 의견을 개진하고 여론을 파악하는 광장이 되어야 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어쩌다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됐을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IT학계와 업계의 기술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블록체인 위에서 일어난 활동 기록은 신뢰할 수 있다는 기술의 특성상 국민 청원의 진정성을 해치려는 각종 시도를 원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블록체인 국민청원 게시판을 구현하는 데 드는 시간이나 비용이 크지 않아 실현 가능한 서비스라고 판단하고 있다. 투입 비용이 적으면서도 청원 동의에 대한 진실성을 보장할 수 있어 도입 효과는 뚜렷하다는 의미다.
7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작성된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글은 180만 명을 돌파했다. 정부의 의무 답변 기준인 20만을 훌쩍 뛰어넘은 것은 물론 국민적 공분을 샀던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기록 119만명을 넘어설 만큼 폭발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야권 지지층이 맞불 성격으로 올린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도 이미 30만건을 돌파해 청와대 공식 입장 발표 요건을 훌쩍 충족했다.
다만 정치적 입장이 담긴 청원 인만큼 호응이 커질수록 과연 이 숫자가 믿을 만한 기록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베트남 IP를 이용한 청원 참여수 조작설이 퍼졌다. 베트남에서 접속한 트래픽 점유율이 13.94%로 기존의 20배 넘게 뛰었다며 자유한국당 해산 촉구 청원이 조작된 것 같다는 의혹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다. 여기에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페이스북에서 베트남 IP 유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민청원의 신빙성 논란은 여의도 정계의 주요 의제로 올라섰다. 이후 베트남 접속이 증가했던 것은 3월 데이터로 청원글이 올라오기 전이었다는 사실관계가 확인되면서 사그라든 상태다.
매크로 동원설이나 북한 배후설도 있다.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이달초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서 “북한의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의 ‘우리민족끼리’라고 하는 매체에서 4월 18일 ‘한국당 해산시켜라’는 것을 발표하니까 나흘 뒤인 4월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국당 해산’ 청원이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또 “1초에 30명씩 청원이 들어온다”는 점을 들어 “대대적인 매크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걸로 봐서는 북한의 어떤 지령을 받는 이런 세력들에 의해서 기획되고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와대 청원사이트의 근본적인 운영방식에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네이버나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아이디 중 한 가지로 있으면 누구나 청원 글을 작성하거나 특정 청원에 동의할 수 있는 구조다. 이때 네이버의 경우 한 명 당 3개까지 아이디 개설을 허용해, 현 제도상에서는 네이버 아이디만 바꿔 접속하더라도 청원에 3번 동의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10만 명의 동의에 그칠 청원이 30만 명의 동의로 부풀려지는 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이상도 가능하다. 심재철 한국당 의원은 지난 1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서로 다른 이메일로 무한대 작업이 가능하다”며 “네이버는 아이디를 3개 발급할 수 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구글 이메일로 가입하는데 이메일을 무제한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청원 개수가 많다·적다가 전혀 의미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2018년 1월 6일,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라는 청원에 카카오톡 계정을 이용한 중복 동의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원인들은 인터넷 방문 기록을 담은 임시파일 쿠키를 삭제하는 방법으로 동일 IP로 어뷰징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악용했다. 청와대는 이 사태 이후 카카오(다음)를 통한 로그인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접속 방식, 청원 동의 방식이 사용되는 한 매크로 조작설이나 해외 IP를 이용한 부당 청원, 북한의 지령을 받은 색깔론 등이 계속해서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블록체인에서는 이용자들이 암호화폐를 주고 받는 등의 활동을 할 경우 이 내역이 시스템 위에 새겨지게 된다. 별도의 기록을 새길 수도 있다. 지난해 4월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은 이더리움의 551만7,596번째 블록에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은 이더리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변조 없이 유지된다. 블록체인의 기록은 수학적으로 연결돼 있어 한 번 새겨진 내용은 추후 수정이나 조작이 사실상 불가능한 특징이 있다. 수정을 시도할 경우 기록의 연결 사이에 내포된 수학적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적용하면 이렇다. 기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앱 형태로 개발하고 연동한 코인을 발행한다. 이 코인은 금전적 가치는 지니지 않고 청원에 동의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이용권 성격이다. 한 청원에서 동의 버튼을 누르면 코인이 사용된 것으로 인식되고 이 활동 기록은 블록체인에 일시 정보 등과 함께 새겨진다. 한 청원에 하나의 코인만 사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할 경우 중복 동의는 원천 차단된다.
이 때 이용자의 개인신분 확인은 네이버 아이디 등 포털 사이트 아이디가 아닌 공인인증서 등을 활용한다. 어준선 코인플러그 대표는 “전 국민의 신분을 블록체인에 올리지 않아도 공인인증이나 신용카드인증 등 기존 방법으로 본인 인증을 받아 블록체인 상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 방식으로 청원에 참여하려는 이들은 누구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포털 사이트 아이디의 경우 이름과 주민번호만 알아도 계정을 생성할 수 있지만 공인인증서는 주민번호와 이름은 물론 계좌번호, 계좌 비밀번호, 계좌 개설시 은행에서 받은 보안카드나 OTP 등을 함께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도용이나 조직적 동원을 통한 무단 계정 생성의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동통신을 이용한 인증으로 블록체인 계정을 만드는 방식도 나온다.
기술적 난도와 비용은 어떨까. 어 대표는 “블록체인 위에 앱을 하나 만드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며 “시간과 비용이 크게 소요되거나 기술적으로 구현이 까다로운 수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블록체인학회장인 인호 고려대학교 교수는 “현재 국민청원 상에서 발생하는 신뢰 문제의 핵심은 서버에 기록된 내용의 조작보다는 아이디를 동원하거나 허위 계정을 이용하는 문제”라며 “블록체인으로 아이디를 만들 경우 위변조가 어렵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 교수는 “블록체인 기반 신원 인증을 한번 만들어 둔다면 국민 청원 뿐 아니라 각종 증명서 발급, 금융활동도 위변조 우려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전자정부 4.0 시대를 열 수 있다”며 “현재 세계에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인구가 25억 명인데 만약 국내에서 블록에인 신원인증 작업을 추진한다면 이는 세계의 표준 기술로 장착될 수 있다”고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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