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핵 농축 재개’ 엄포에도 미국은 물론 핵 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당사국인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 등 유럽연합(EU)까지 꿈쩍하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은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이란의 어떠한 공격에도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이어갔고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불러낸 EU도 이란이 핵 농축 재개에 앞서 제시한 ‘60일 유예기간’을 완강히 거부했다. 외신들은 관련국들 사이에 이란발 핵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알자지라 등은 유럽 출장길에서 급거 귀국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인과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이란 혹은 그 대리인의 어떤 공격에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이란 정부는 미국의 자제를 해결능력 부족으로 오인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도 한 단계 더 높였다. 중동 해역을 관할하는 제임스 멀로이 미 5함대 사령관은 이날 로이터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항모전단을 (호르무즈) 해협 안으로 보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며 강경한 메시지를 전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봉쇄 위협을 받고 있는 원유수송로다.
미국의 외교·안보라인이 잇따라 이란을 향한 고강도 압박에 나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과 관련해 내가 보고 싶은 일은 그들이 나에게 전화하는 것”이라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이란 지도부에 대해 대화 채널이 아직 열려 있음을 우회적으로 알렸다.
EU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핵 합의를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이란의 선언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완전한 이행’을 촉구했다. EU는 “어떠한 최후통첩도 거부하고 이란의 핵 합의 이행을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60일 안에 이란과 협상해 핵 합의 때 약속했던 금융·원유 수출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는 이란 측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 손은 여전히 (이란을 향해) 뻗어 있다”며 “분쟁이 더는 확대되지 않도록 외교적 해법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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