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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규제 푼다면서 지자체와 협의조차 안했다니

정부가 규제를 없애겠다며 내세운 규제 샌드박스가 1호 사업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10일자 본지 보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인 서울 탄천 수소충전소 설치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애초 탄천 수소충전소 설치를 허용해달라는 안건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고 산업부는 이를 허용했다. 이후 서울시는 뒤늦게 해당 부지 인근에 슬러지보관소 도입이 예정돼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산업부와 서울시는 대체부지를 확보해 현대차에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이곳이 학교와 인접해 교육청의 별도심사를 거쳐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 규제와 상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에 나오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규제를 파악해야 하며 그러려면 정부와 지자체 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수적이다. 해당 부지에 이미 다른 시설이 들어서기로 돼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사업을 허용했다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 간에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정부에 규제 철폐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심이 간다. 기업은 수소충전소 설치를 위해 이미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시작부터 이런 식의 난관에 부딪히면 어떤 기업이 미래의 결과를 예상하고 투자에 나서겠는가. 그러잖아도 규제 샌드박스는 실제 사업화까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으로서는 투자 결정이 쉽지 않다. 실증 특례나 임시허가를 받아 사업을 시험해볼 수는 있지만 나중에 본허가를 따지 못하면 출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당장 수소충전소만 해도 하나 짓는 데 20억원은 족히 드는데 이번에 설치가 허용되더라도 나중에 규제가 살아나 최악의 경우 철거해야 한다면 어떤 기업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업화에 나서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우리의 규제 샌드박스를 콕 집어 민간의 혁신 의지를 꺾는 관료주의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샌드박스 대상으로 승인받기 위해 많은 행정절차와 서류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하고 있다고 생색이나 낼 것이 아니라 제도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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