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다팀 페로키테르(Gradatim ferociter)’
민간 우주탐사기업 중 하나인 블루오리진의 슬로건인 이 말은 ‘한 단계씩 맹렬하게’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9일(현지시간) 달 착륙선 ‘블루문’(Blue Moon)의 실물 모형을 공개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이자 블루오리진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절차를 빼먹는 일 없이, 또 꾸물거리는 일도 없이 계단을 모두 하나씩 빨리 밟아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날 “이제 달에 돌아갈 시간”이라고 주장한 베이조스의 말처럼 인간이 달 착륙에 성공하며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지 50년 만에 또 다시 달에 가려는 인간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미국과 러시아가 자웅을 겨루던 냉전 시대 정부 주도의 달 탐사가 아니라 이제는 블루오리진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중시하는 민간 기업들이 그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우주 탐사가 상징적 목적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이들 기업들은 민간 기업답게 최적의 비용으로 우주 여행 상용화나 우주 개발 등 실용적인 목표를 가지고 빠른 속도로 우주 탐사에 나서고 있다.
이날 베이조스가 공개한 블루문 역시 민간 우주 기업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블루문은 장비·화물을 가득 채우면 15t, 화물을 비우고 귀환할 때는 7t 정도 중량이 나간다. 달 착륙선에는 4대의 자율주행 로버(천체 탐사용 차량)가 실린다. 블루문의 이러한 적재 용량은 장비·화물을 탑재하고 궁극적으로는 우주비행사 또는 우주관광객인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블루오리진의 달 착륙선은 우주 공간에 식민지 형태의 기지 구축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것과도 관련돼 있다.
블루오리진은 이에 앞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우주 관광용 유인 탐사선인 ‘뉴셰퍼드’ 개발에 주력해왔다. 뉴셰퍼드는 지난해 4월 상공 66마일(106㎞)까지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블루오리진은 또 ‘뉴글렌’으로 불리는 초중량 재활용 로켓 개발 프로젝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날 블루오리진의 달 탐사선 공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끄는 우주탐사업체 스페이스X와의 민간 우주탐사 경쟁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스페이스X는 이미 달 탐사 프로젝트에 최초로 탑승할 민간인으로는 일본 기업인 마에자와 유사쿠를 선정 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의 달 여행 왕복 거리는 47만5,000 마일(약 76만4,000㎞)로 5일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2023년을 첫 여행 시점으로 잡아두고 있다.
스페이스X는 또 미국 땅에서 미국 우주인을 유인 우주선에 실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미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테스트 과정에서 유인 캡슐인 크루 드래곤이 소실된 것으로 드러나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번에 유실된 캡슐은 지난 3월 초 무인 상태로 ISS까지 시험 비행에 성공한 우주선이었다.
이러한 실패에도 스페이스X는 성능을 인정 받으며 이미 미국 국방부와 민간기업들과 여러 건의 발사 대행 계약을 맺은 상태이며, NASA도 내년으로 계획한 무인 달 탐사선 발사에 팰컨 헤비 로켓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 팰컨 헤비 로켓은 스페이스X의 주력 로켓인 팰컨 9의 추진력을 대폭 늘린 개량형으로, 지난해 2월 첫 시험 비행을 통해 창업주인 일런 머스크의 스포츠카를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린 바 있다. 팰컨 헤비 로켓은 팰컨9의 최신 제품인 블록5 3기를 묶은 것으로, 추진력이 팰컨9보다 3배나 강하다. 부스터당 9기, 총 27기의 엔진을 장착해 제트 여객기 10여대와 맞먹는 510만파운드의 추진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스페이스X의 설명이다.
스페이스X는 블루오리진과 마찬가지로 비용 절감을 위해 로켓 부품 회수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전의 로켓들이 이륙 과정에서 분리된 부스터를 해상에 그대로 폐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뿐 아니라 후발주자인 일본과 이스라엘 등의 민간기업들도 우주 탐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일 NHK는 일본 홋카이도 소재 벤처기업 ‘인터스텔라 테크놀로지즈’가 만든 소형로켓 ‘모모 3호기’가 이날 오전 5시 45분 홋카이도 다이키초에서 발사됐다고 보도했다.
인터스텔라는 이 로켓이 목표한 고도 100㎞의 우주 공간에 도달해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개발한 로켓이 우주 공간까지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모 3호기는 길이 10m·직경 50㎝ 크기로 약 20㎏ 정도의 관측기기를 싣고 있으며 약 4분간 무중력 환경에서 전자기기 실험을 할 수 있다고 NHK는 전했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능력은 아직 없지만 2023년에 이를 실현해 인공위성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것이 인터스텔라의 계획이다.
인터스텔라 역시 민간 기업 답게 로켓 개발 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가 이른바 ‘가격파괴’다.
저가 로켓을 만들기 위해 가급적 특별 주문 부품 대신 시판되는 재료와 부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몰에서 유통되는 금속 재료나 잡화·주택용품 판매점에서 취급하는 단열재 등을 사들여 활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줄였다.
그간 일본의 우주 로켓 개발 사업은 일본 정부가 사실상 관리하는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에 초소형 인공위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민간의 참여가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일본에서는 인터스텔라 외에도 캐논 전자 등 4개 업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스페이스 원’이 2021년 발사를 목표로 로켓을 개발 중이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이스라엘은 사상 첫 민간 달 탐사선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2011년 설립된 이스라엘 비영리기업 스페이스IL이 제작한 ‘베레시트’(Beresheet·창세기)라고 명명된 달 탐사선은 성공적으로 발사됐지만 달 표면 착륙 마지막 순간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베레시트는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어 발사됐다.
이스라엘 국영 방산업체인 항공우주산업(IAI)의 오퍼 도론 우주총괄팀장은 “달에 도착했다는 자체만으로 놀라운 성공”이라며 “베레시트는 지금까지 달에 도달한 우주선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싼 우주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페이스IL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야리브 바쉬도 “이미 다음 발사계획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며 “2∼3년 안에 또 다른 탐사선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는 “아마존과 같은 재정적 힘을 가진 민간 기업이 우주 탐사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우주 개발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며 “이들 기업들의 선전이 모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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