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인구통계학자인 박유성 고려대 교수팀이 의학발달을 감안한 새로운 기대수명을 계산했다. 그 결과 한국인의 수명이 훨씬 빨리, 더 길게 연장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생존한 1945년 출생자 중 남자는 23.4%, 여자는 32.3%가 100세까지, 1971년생은 남성 중 47.3%가 94세까지, 여성은 48.9%가 96세까지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인생 100세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100세 시대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성큼 다가선 100세 시대에는 60세까지 직장생활을 한다 해도 그 후 30~40년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이 인생 후반전을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무엇보다 퇴직 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내 대표적 은퇴설계 전문가인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를 만나 노후설계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노후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증권거래소에 근무하던 1975년 일본으로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일본에서 진행되던 고령화를 보고 노후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 현지에서 노후 준비를 못해 허드렛일을 하는 노인이 적지 않은 데 충격을 받았다. 증권보관기관을 방문했을 때 공무원이나 기업체 간부로 일했던 70대 노인 100여명이 둘러앉아 증권을 세거나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뒤 대우증권으로 옮겨 도쿄사무소장으로 8년여간 근무하면서 노후생계 문제를 더 진지하게 접했다. 우리보다 20여년을 앞서가는 고령화 사회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곧 닥칠 문제라고 느꼈다.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노후설계 문제를 공부하고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후에도 일본 상황을 계속 지켜봤는데.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부터 1960년까지 베이비붐이 일었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기가 정년 60세가 되는 2007년부터였는데 그 2~3년 전부터 서점가에 노후설계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봤다. 본격적으로 노후에 관한 공론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은퇴 즈음에야 노후를 준비하니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많은 일본 직장인들이 퇴직 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 같은 일본의 시대 흐름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서적도 구해보면서 우리는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노후설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100세까지 사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별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일 없이 장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노후설계를 해야 한다. 노후에 부부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내려면 몇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등 여러 얘기가 많지만 자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사람마다 노후에 처할 환경이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얼마면 노후 준비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장수 리스크, 자녀 리스크, 건강 리스크, 저금리 리스크, 부동산에 편중된 자산구조 리스크 등이 그것이다. 특히 부모 된 도리를 다한다고 자식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지원하다 노후준비를 못해 궁핍해지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이래서는 부모도 자식도 모두 불행해질 수 있다.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노후설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은퇴 후 생활에 대한 부부의 생각차이를 대화를 통해 좁혀나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남편과 아내가 꿈꾸는 노후생활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리스크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대비해야 제대로 된 노후설계를 할 수 있다.
-노후 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나.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 은퇴자처럼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특히 지금은 50대 초반이면 상당수 직장인들이 퇴직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현역으로 일할 때부터 시작해도 결코 빠르지 않다. 지금의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노후에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령별로, 단계별로,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30대에는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을 아우르는 ‘3층 연금’에 꼭 가입하고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른바 인적자본 투자다. 요즘은 평생직장 시대가 퇴색된 만큼 자신에 대한 투자에 신경을 써야 한다. 40대에는 특수질병보험에 가입하는 등 건강 리스크 관리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자녀 리스크 관리도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은퇴준비를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녀 교육비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50대 들어서는 가계자산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가계자산 구조조정은 어떤 의미인가.
△부동산에 집중된 자산구조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느 한 곳에 재산을 올인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율을 높여야 한다. 한국과 미국·일본의 자산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 가계자산이 얼마나 편중돼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계의 부동산자산 비율은 평균 75%에 달하고 금융자산은 25%밖에 안 된다. 특히 60대 이상 가정은 부동산이 81%로 더 높다. 반면 미국은 2017년 기준으로 우리와 거꾸로 30(부동산) 대 70(금융)이다. 일본의 경우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와 비슷한 부동산 60%, 금융자산 40% 구조였지만 2017년에는 36% 대 64%로 정반대가 됐다. 일본 사회에도 부동산에 대한 맹신이 있었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자산구조가 확 변했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불패신화에 젖었던 고령층의 타격이 컸다.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가계 스스로 자산구조 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일반적으로 50~60대의 자산 비중은 부동산 50%, 금융 50%가 적당하다. 50대 들어서는 자산구조 변화와 함께 부채를 최대한 줄이는 것도 노후설계에 중요하다. 과다한 부채는 노후생활을 좀먹는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연금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했는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연금에 가입하는 것이다. 선진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만 높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은퇴 후의 주요 수입원이 공적·사적연금인 곳이 선진국이다. 최소생활비 정도는 연금으로 받아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일본·독일 고령층의 은퇴 후 주요 수입원을 보면 공적·사적연금이 적게는 60~70%(미국·일본), 많게는 80~90%(독일)에 이른다. 자녀의 도움은 모두 1% 남짓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확연히 비교된다. 2017년 기준으로 공적·사적연금이 12.5%에 불과하다. 1980년의 0.8%에 비해 나아진 게 이 정도다. 자녀의 도움은 72%에서 25.7%로 확 낮아졌는데 이제는 더 이상 자녀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만 보더라도 수급자가 전체 국민의 37%에 불과하고 이 중 월 50만원 미만이 77%로 가장 많다. 100만원 이상 수급자는 5%가 채 안 된다. 30대에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퇴직연금에 꼭 가입하라고 하는 이유다. 특히 국민연금을 잘 활용하는 게 노후 준비의 첫걸음인 만큼 전업주부도 임의가입하는 게 좋다. 퇴직연금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노후대비 수단이다.
-최근 퇴직연금 수익률이 저조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수익률 최악이라는 자극적인 내용만 언급될 뿐 낮은 수익률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가입자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 제시가 빠져 있는 점이 문제다. 무엇보다 금리 1~2%대 예금 등 원금보장형 상품에 넣어둔 확정급여형(DB), 그것도 단기 수익률을 두고 논란이 벌어져 아쉽다. 이런 식의 논쟁은 연금 가입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투자상품의 비중이 5%도 안 되는 DB형의 연간 수익률이 1%대에 머무르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퇴직연금도 1년 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20년·30년의 장기투자, 적립식 투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특히 앞으로 미국 등 선진국처럼 실적배당상품 투자 비중이 높은 확정기여형(DC)이 많아질 것을 예상하면 더욱 그렇다. 원인이 무엇이든 최근 불거진 퇴직연금 수익률 논란은 아직 연금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하고 대중화가 덜 돼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연금 대중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요즘 강연을 다녀보면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나 인식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연금자산이 노후의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정부와 금융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금자산이 예금상품에만 투자돼 잠자고 있게 만든 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노후자산의 연금화와 연금운용의 활성화는 국민경제 입장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연금수익 증대는 은퇴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소비진작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을 독려해 가입자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퇴직연금자산 운용은 매년 한 번씩 1개월분 급여를 10년·20년·30년 장기로 적립식 투자를 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 등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입사한 뒤 대우증권으로 옮겨 국제본부장·도쿄사무소장·리서치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현대투자신탁운용과 굿모닝투자신탁운용 대표를 거쳐 2004년 2월부터 미래에셋 부회장 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일해왔다. 경험과 이론을 갖춘 ‘100세 시대 노후설계 전도사’로서 연간 200~300회의 강연을 통해 노후준비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2014년 9월부터는 트러스톤자산운용연금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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