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에 이인영 의원이 당선됐습니다. 결선투표까지 가며 경쟁한 김태년 의원을 27표 차로 크게 앞지르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당초 당권파인 김태년 의원이 수월하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자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비주류의 반격, 친문의 분화,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 대한 의원들의 반발 등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의원이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오른 것은 이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이런 분석은 당내 구도와 관련지었을 뿐 정치인 ‘이인영’ 개인 변수는 주목하지 않은 한계가 있습니다. 지난 9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자리에서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완전히 바뀐 이인영”이라고 신임 원내대표를 소개를 합니다.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이 자리에서 “언론인들에게 전화 잘 받는 원내대표 돼달라는 주문 받았는데 최선을 다해 받겠다”라고 하는가 하면 “부드럽고 따뜻한 통화 노력하겠다. 자꾸 웃어 보일 테니 제가 웃을때마다 찍어주시면, 더 많이 웃겠다”라고 했습니다.
◇여름 장대비·뙤약볕 견디며 민통선 걸었던 이인영
지난 8일 당선 직후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도 이 원내대표는 “제가 고집이 세다 이런 평들이 있는데 원내대표 하면서 완전 깔끔히 불식하겠다”며 “부드러운 남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원내대표는 “까칠하다 이런 평가 저도 따끔따금 했다. 마지막으로 좀 따뜻한 사람 되고 싶었다. 원래 제가 따뜻한 사람인데 정치하면서 조금 저의 천성을 잃어버린 거 같아 속상했는데 의원님들이 주신 지지로 저의 따뜻한 마음을 찾는 기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까칠했던 이 원내대표가 정말 바뀐 걸까요.
시간을 조금 거슬러 가 보겠습니다. 지난해 6월 이 원내대표는 비무장지대와 인접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약 340㎞를 따라 걷는 ‘2018 통일걷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는 지난 2017년부터 통일걷기 민통선 횡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행사 때마다 당 안팎에서는 “왜 저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당시 소식을 보도한 언론은 지금 여의도에선 “정권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한숨과 “이인영을 누가 말리냐”는 쓴웃음이 함께 새어나왔다고 전합니다. 아니, 차라리 반응이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함)에 가까웠다고도 평가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여당 원내대표에 올랐으니 내부적으로 적잖게 놀랄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외롭고 무거운 발걸음
이 원내대표는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1990년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고 학생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른바 ‘젊은 피’를 수혈하던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된 후 최고위원을 거치는 등 민주당 진보정치의 산증인으로 자리를 지켜온 정치인도 이 의원이었습니다. 정치권에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발을 들여놓았지만 일부에선 강성 운동권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의원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또 다른 동료 의원은 “원외에서 최고위원까지 당선됐던 이 의원은 그 다음 도전할 당직이 당 대표밖에 없었다”며 “원내 대변인 한번 못하고 1기 전대협 의장 이후에 족적을 남긴 게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다소 외롭고 무거웠을 것 같은 이 같은 발걸음이 통일걷기를 할 때는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통일걷기를 할 때마다 아무 데나 철퍼덕 주저 않자 함께 걷는 대학생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가방에서 먹을 걸 꺼내 나눠주는 동네 아저씨같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여의도서 성격 까칠한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의 ‘꼰대’는 적어도 아니라는 게 함께 통일걷기를 경험한 지인들의 평가입니다.
◇변신보다 늘 그대로의 ‘이인영’에 신뢰
지난해 통일 걷기에 나선 이 원내대표를 동행한 기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통일과 노동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크게 남지는 않은 것 같다”고 질문하자 그는 “스피커가 작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정치 인생에서 계속 이야기해온 문제다.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평화를 넘어선 통일을 주장했다. 이제 또 하나, 2020년 사회적 패권 교체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그는 “지방선거 압승 이후 우리가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2020년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본과 보수 언론 등이 장악한 사회적 패권을 교체할 수 없다. 사람들은 내게 대중적으로 힘 있는 정치인이 된 다음에 큰 화두를 던지라고 하는데, 글쎄 정치인이 가치를 이야기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이러다 가도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도 말합니다.
일각에선 대중적인 메시지 전달력이 약한 그를 향해 ‘1987년의 화석’이라고 조롱했지만 20여 일씩 여름 장대비와 뙤약볕을 견디며 20대 청년들과 걷고 자고 먹는 일은 그의 정치 순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이었습니다. ‘순수성의 정치, 그리고 신념의 정치’. 그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기간 동안 ‘세대’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60대가 됐을 때 한반도 평화문제를 80대인 86세대가 책임질 일인가. 다음 세대가 김정은과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선배들이 터줘야 한다” 느리지만 진심을 다했던 그의 정치행보는 사실 변화가 없었습니다. 진보 ‘꼰대’를 걷어 차버리겠다는 것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온 말이 아닙니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 원내대표가 바뀌었다고 호들갑스럽지만 이 원내대표는 늘 그 자리에서 장대비와 뙤약볕을 견디며 걸어왔습니다. 큰 표차의 원내대표 경선 승리는 변신한 ‘이인영’보다 늘 그대로인 ‘이인영’에 대한 신뢰가 더 큰 힘이 됐습니다. 다만, 이 원내대표가 과거보다 많이 웃는 것은 사실입니다. 앞으로 그 미소가 경직된 여야관계를 녹일지도 두고 봐야겠습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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