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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합스부르크 왕가





16세기 말 아드리아해의 무역항 트리에스테에서는 ‘타라 은화’가 통용되고 있었다. 당시 상인들이 커피를 거래하는 데 사용했던 타라 은화에는 지배자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쌍두 독수리 문장과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아랍 상인들은 커피를 팔아 건네받은 은화로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만든 은화의 신용도가 높아 유럽 각국은 물론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표준화폐로 널리 애용됐던 셈이다. 타라는 네안데르탈인에서 유래된 말로 훗날 달러의 어원이 됐으니 타라 은화를 기축통화의 원조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5세기 중반부터 600년간 유럽을 통치했던 오스트리아 명문가로 원래 스위스의 초라한 영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1273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권력 공백기를 타고 독일 국왕에 올라 전면에 부상하게 됐으며 15세기 말에는 막시밀리안 1세가 에스파냐 왕실과 한 통혼에 힘입어 본격적인 가문의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영토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강대국과의 혼인정책이라는 나름의 외교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근친결혼을 장려한 탓에 대대로 유전병에 시달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카를로스 2세의 경우 주걱턱이 심해 침을 자주 흘리고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해 ‘광인왕’으로 불릴 정도였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 대부분을 장악하는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지만 프랑스만은 예외였다. 최대의 라이벌 프랑스와는 유럽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했다.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은 양 가문의 대립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대패하자 영국·러시아와 손잡고 그를 권좌에서 쫓아낸 것도 합스부르크였다. 나폴레옹은 당시 합스부르크 출신의 마리 루이즈와 정략결혼을 했지만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면서 짧은 결혼 생활을 끝내야만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나폴레옹 가문이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혼인으로 맺어진다는 소식이다. 나폴레옹 남동생 제롬의 5대손인 프랑스 청년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은 마리 루이즈 조카의 직계 후손인 오스트리아 여성과 10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200년간 이어진 원수 집안이 사돈의 연을 맺는다니 사랑의 힘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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