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 사라진다.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린다. 인구 고령화가 가속돼 경제는 활력을 잃고 종국에는 민족 소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즘 우리의 얘기가 아니다. 1934년 스웨덴의 부부가 공저한 ‘인구 문제의 위기’에 담긴 내용이다. 남편은 서른여섯 살의 스톡홀름대 경제학 교수인 군나르 뮈르달. 아내 알바(32)는 사회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두 사람은 세계 기록도 갖고 있다. 노벨상 118년 역사에서 부부 수상자는 퀴리 부부를 비롯해 모두 다섯 쌍. 뮈르달 부부도 여기에 포함되지만 각기 다른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사례다.
스웨덴에서 행정가·정치인·외교관으로 일한 알바는 지난 1982년 국제 핵 확산 저지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군나르는 저개발국가의 경제 발전 이론을 가다듬은 공로로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공동 수상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1980년대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시대를 거치며 하이에크가 유명해졌지만 당시에는 군나르의 지명도가 훨씬 높았다. 1987년 5월17일 88세 나이로 세상을 등진 군나르는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통계가 말해준다.
스웨덴의 1934년 합계출산율은 1.67명. 불과 11년 뒤인 1945년 이 비율은 2.63명으로 뛰었다. 사민당 정부가 뮈르달 부부의 제언에 따라 양성평등과 여성 인력 활용 극대화, 무료 정기검진, 야근 축소와 휴무 확대, 육아휴직 등 복지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덕이다.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1.75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뮈르달 부부의 경고가 나온 85년 전 662만명 수준이던 인구는 2018년 말 현재 1,023만명에 이른다. 합계출산율 1명 선이 무너진 한국의 입장에서는 부러운 얘기다.
군나르는 불평등이 가져올 파국을 일찌감치 경고한 학자로도 유명하다. 1938년 흑인 문제를 다룬 ‘미국의 딜레마’에서 발표한 ‘누적적 인과관계’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같이 가난 역시 단순히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군나르의 처방은 정부의 강력한 개입. 빈곤 계층과 지역에 대한 교육 공공 서비스를 확대하고 고용과 복지를 인위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이 강소국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책으로만 대한 스승 군나르의 메시지가 귀에 맴도는 것 같다. ‘인구 감소는 국가의 자살 행위다’ ‘사람에게 투자하라’.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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