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하면 오랜 기간 내전과 전쟁 등으로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고 최근에도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우선 떠오른다. 하지만 레바논이 ‘중동의 스위스’라 불릴 정도로 푸른 산과 함께 비취빛 바다와 해변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국가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서양 알파벳의 기원이 된 페니키아 문자로 유명한 페니키아 문명의 발원지고 세계적인 문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을 배출했으며 나라 곳곳에 페니키아·로마·중세시대의 유적지들이 숨 쉬는 곳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다.
레바논의 4개의 유적지(비블로스·바알베크·티레·안자르)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성자의 계곡(Qadisha Valley)도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비블로스’는 고대에 지중해에서 강력한 도시국가를 형성했던 페니키아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해상 무역에 능했던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은 파피루스 위에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어 그리스 세계에 전달했는데 이것이 영어의 알파벳의 기원이 됐다. 비블로스 아히람(Ahiram) 왕의 석관에 새겨진 22개 자음은 가장 오래된 알파벳 문자로 현재 베이루트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비블로스는 역사적으로 여러 세력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오면서 유적이 많이 파괴됐으나 십자군 점령기에 축조된 성벽은 아직도 양호하게 보존돼 있다.
중동에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로마 시대의 유적지 중의 하나가 ‘바알베크’다. 바알베크는 페니키아의 태양신 바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서방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세상에 알려진 바알베크는 지중해와 아랍세계를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로마제국은 자신들의 힘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바알베크에 가장 큰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바알베크에 남아 있는 신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주피터 신전은 원래 54개의 기둥이 있었으나 수차례의 지진과 약탈로 인해 지금은 6개의 기둥만이 남았다.
남부에 위치한 ‘티레’와 및 ‘시돈’에 가면 레바논이 지중해의 여러 문명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십자군, 그리고 오스만튀르크족이 이곳에 정착했고 로마 시대 전차 경기장과 열주로, 십자군시대 성, ‘에시문 신전’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이외에 베이루트 동쪽에 위치한 ‘안자르’는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도시계획을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사례다.
레바논에는 이처럼 찬란한 유적지가 전역에 남아 있다. 온화한 기후, 친절한 레바논 국민, 개방된 문화, 맛있는 음식 등 관광지 및 휴양지로서 매력적인 요소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위험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관광객이 레바논 방문을 여전히 꺼리고 많은 국가가 바알베크 등 유적지가 있는 지역을 아직도 여행제한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와 레바논은 지난 1981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다방면에서 우호 협력 관계를 증진하고 있다. 2007년 7월 이후 UNIFIL(유엔 파병 레바논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가 파견한 동명부대가 레바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티레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동명부대는 적극적인 민군작전을 통해 현지 주민들로부터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가장 모범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국군 최장수 파병부대이다. 우리 정부는 비블로스 및 안자르 유적지 보존을 위해 재정지원을 한 바 있고 다수의 우리 비정부기구(NGO)그룹이 시리아 난민을 위해 의료 활동 등 다양한 지원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레바논은 15년간의 내전,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암살,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여전히 베이루트 시내 곳곳에 총알과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한 후 약 150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레바논에 있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방영된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을 보면 레바논이 내전의 후유증과 시리아 난민 등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막바지 단계에 있으며 2월 신정부가 출범된 것을 계기로 레바논의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레바논이 제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옛 시절의 명성을 되찾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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