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는 오랜 전쟁과 식민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16세기 이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이어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수도였던 서부 항구도시 콜롬보가 있다. 그래서 콜롬보 시내 곳곳에는 서양식 건축물과 함께 독립기념관 등 역사기념물이 산재해 있다. 굴곡진 역사를 품은 콜롬보항(港)이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5세기. 중국 여행가인 법현의 기록에서 카오란푸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당시 실론섬(현 스리랑카) 원주민들은 이 항구를 콜랑바라고 불렀는데 고대 스리랑카어로 항구나 나루터를 뜻한다고 한다.
이곳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때는 8세기 이후로 전해진다. 아랍 상인들이 한동안 몰려 살다가 유럽인들이 동방으로 향한 16세기에는 유럽국의 침략이 잇따랐다. 1517년에 포르투갈의 침입을 받았고 1656년에는 네덜란드가 점령했다. 다시 1796년 영국인들이 들어와 스리랑카가 독립한 1948년까지 약 150년 동안 지배했다. 외세 침입 때마다 콜롬보는 군사적·경제적 거점으로 활용됐다. 인도양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속도가 빨랐다. 특히 영국 식민지 당시인 1815년 수도가 된 후 대대적인 항구 현대화 사업이 이뤄지면서 번창의 길을 걸었다.
1985년 수도가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콜롬보는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물류 중심지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물류 거점으로 스리랑카 해운 화물의 90%를 다룬다. 컨테이너 취급량은 20피트 621만개로 서남아시아에서 최대다. 하지만 인도 등 서남아지역 경제성장으로 교역량이 급증해 처리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콜롬보항 확장의 필요성을 간파한 일본이 인도와 손잡고 항만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일본·인도·스리랑카 3국이 올여름 각서를 교환하고 내년 3월 공사를 시작할 모양이다. 이 같은 일본의 행보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의 일환이자 남부 함반토타항의 장기(99년) 운영권을 확보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라고 한다. 자칫 지역 물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판단으로 재빨리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남방정책’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못했는데 중국과 일본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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