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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만에 다시 시작된 미국의 낙태 논쟁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아이 낳는 일만 허락된 시녀가 등장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의 복장을 한 시위자가 낙태 금지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몽고메리=AP연합뉴스




미국이 47년 만에 낙태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앨라배마주에서 촉발된 낙태논쟁이 미국 전역에 사회적·이념적 분열을 낳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대선 주자들이 가세하며 2020년 대선 이슈로도 확대되고 있다. 통상 낙태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로 여겨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 진영 간 첨예한 전선이 형성될 전망이다. 여기에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 법안은 지난 1973년 여성의 낙태선택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뒤집겠다는 의도로 마련된 만큼 보수 우위의 미 연방대법원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도 주목되고 있다.

미국 전역에 찬반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24일(현지시간)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 낙태금지법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낙태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날 미시시피주 연방 지방법원의 칼튼 리브스 판사는 이른바 ‘심장박동법’으로 불리는 임신 6주 이후 낙태금지법에 대해 “여성의 권리에 즉각적인 피해를 가져올 위협이 된다”라고 판시했다.

리브스 판사는 “대다수 여성이 임신 6주 이전까지는 낙태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밝혀 법의 실효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미시시피주 낙태금지법은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소송은 미시시피주 외에도 초강력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키며 낙태 논란의 진앙지인 앨라배마주에도 제기돼 있어 미 전역에 낙태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케이 이베이 앨라배마 주지사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응급상태를 제외한 모든 경우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낙태 논란이 불거졌다. 앨라배마 낙태금지법은 성폭행,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의 낙태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이로 인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미국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성폭행 피해로 인한 낙태까지 전면 금지한 앨라배마주 낙태금지법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CLU의 출산자유프로젝트 소속 변호사 알렉사 콜비 몰리나스는 이날 앨라배마주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앨라배마 주의회는 의학적으로 불필요하고 정치적으로 동기화한 금지로 낙태를 밀어냈다. 그들이 반 낙태 의제를 드러내고자 얼마나 도를 지나쳤는지가 극단적인 금지법률에 나타나 있다”라고 주장했다.

ACLU 등은 앨라배마주 외에 태아 심장박동법이 마련된 조지아·미시시피·아이오와주와 임신 8주 이후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주리주 등지에서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공화당 소속인 미주리주 마크 파슨 주지사는 임신 8주 이후에는 성폭행·근친상간 피해를 포함한 어떤 낙태 시술도 전면 금지하는 법률에 이날 서명했다. 미주리주 낙태금지법은 낙태 금지 한도를 임신 8주 이후로 정해 조지아 등에 비해 2주간 더 넓혔지만 낙태 수술을 강행한 의사에게 징역 5~15년의 강력한 처벌 규정을 뒀다.

법안의 효력은 6개월 이후에 발생하지만 시민단체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미 연방대법원의 지지를 받아야 할 수 있다. 현재 앨라배마에 앞서 낙태금지법을 채택한 6개 주도 실제 효력이 발생한 곳은 아직 없다.

외신들은 앨라배마의 낙태금지 법안이 미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로 불리는 ‘로 대(對 웨이드’를 뒤집으려는 목적에서 마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법안을 발의한 테리 콜린스 하원의원(공화·앨라배마)은 “이 법안은 ‘로 대 웨이드’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며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연방대법원에 보수 성향의 재판관이 늘어나면서 낙태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법적 싸움을 일으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 상원의원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열린 낙태금지 반대 시위에 합류, 메가폰을 들고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정치권에서도 낙태 찬반 논쟁이 가열된 가운데 2020년 미 대선을 앞두고 낙태 논란이 대선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대선 민주당 경선 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조지아주, 앨라배마주, 미주리주의 낙태 금지법에 대해 “사실상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이 낙태하는 것을 금지하는 강력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 법이 헌법이 보장한 여성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트위터에 함께 올린 글에서는 이런 법들이 여성이 합법적으로 낙태할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는 노골적인 시도”라고 규정하고서 이런 시도를 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이든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트위터를 통해 “나는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면서도 “성폭행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경우 등 3가지는 예외”라고 밝히며 낙태 논쟁에 불을 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 낙태 금지법’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이 법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동시에 낙태반대론자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보수진영을 결집하면서도 낙태를 지지하는 진보진영과 여성층을 동시에 아우르기 위한 목적이 담겼다고 보고 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3가지 예외 조건에 대해서는 낙태에 대한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며 “이는 그의 중요한 지지기반인 많은 낙태 반대 보수층에서도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우리는 함께 뭉쳐서 2020년 생명을 위해 이겨야 한다”면서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거나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생명을 위해 힘겹게 싸워 얻어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며 공화당 내부의 균열을 경계하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실제로 앨라배마주 법안 통과 시킨 25명의 의원 모두 공화당의 백인으로 나타나면서 공화당에 대한 비난 수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민주당 예비 대선후보들은 낙태금지법안과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공화당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키어스틴 질리브랜드(뉴욕) 상원의원은 최근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이 갖고 있는 ‘임신·출산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시작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여성 투표자의 급증 추세는 내년 대선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WP에 따르면 스티브 불럭 미국 몬태나 주지사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여성이 원한다면 의사나 가까운 사람들과 협의해 낙태를 할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샌더스 의원은 NBC방송의 ‘밋 더 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슬프게도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은 의료 이슈에서 정치적인 이슈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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