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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한국 맥주 부활의 조건

김현상 생활산업부 차장





‘한국의 브랜드 맥주를 미국에서 만들어 국내로 수입해 마신다?’

맥주 마니아들도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현실 속 이야기다. 국내 맥주 1위 기업 오비맥주는 이달부터 한 달간 대표 브랜드 ‘카스’의 740㎖ 대용량 캔 제품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수입 판매하고 있다. 미국산 대용량 카스는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당시에도 한정판매했다가 완판된 바 있다. 오비맥주는 대용량 맥주에 대한 시장 수요 파악 차원이라지만 자세한 속내를 들여다보면 주세법 체계와도 맞물려 있다.

종가세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주세법은 국내 생산 맥주에 대해서는 제품원가와 판매관리비·예상이윤이 모두 포함된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반면 수입맥주는 신고가 기준으로 부과된 세금에 판관비와 이윤 등을 붙여 판매한다. 신고가를 낮추면 낮출수록 세금이 적어지는 만큼 수입맥주는 국산 맥주보다 세금 부담이 최대 20~30%나 적다. 국산 맥주 업계를 중심으로 역차별 논란이 일면서 알코올 도수와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 도입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주세 체계의 허점을 틈타 수입맥주는 빠르게 국내 맥주 시장을 잠식해오고 있다. 지난 2012년 3.9%에 불과했던 수입맥주의 점유율은 올해 30%대 돌파가 유력한 분위기다. 그 사이 일부 국산 맥주 업체의 공장가동률은 3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해외 생산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토종 수제 맥주 브랜드 ‘더부스’는 국내 양조장에서 철수하고 100% 미국 생산을 결정했고 오비맥주는 광주공장에서 생산하던 버드와이저와 호가든의 캔 제품을 2년 전부터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관련 일자리 감소는 물론 국내 맥주 산업의 붕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종량세가 도입된다고 해서 소비자가 국산 맥주를 선택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국산 맥주가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토대를 만들어줄 필요는 있다. 소비자가 다시 국산 맥주를 찾게 하는 것은 그다음 순서다. 더욱이 여러 글로벌 맥주 브랜드들은 종량세가 도입되면 한국 생산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수년째 주세법 개정을 미루고 있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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