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데뷔 후 7년 간격으로 두 번 우승한 재미교포 케빈 나(36·한국명 나상욱)가 세 번째 우승은 10개월 만에 해냈다. 15년 만의 통산 3승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3승 중 2승을 아빠가 된 2016년 8월30일 이후 2년9개월 사이에 수확했다. ‘우승시계’가 빨라진 원동력은 가정인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느린 플레이 속도나 무뚝뚝함으로 세간에 알려졌던 케빈 나는 결혼 후 웃음 많은 딸바보로 이미지 변신 중이다.
케빈 나는 27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찰스슈와브 챌린지(총상금 730만달러)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그린으로 달려 나온 딸 소피아를 맞으며 한국말로 “아빠 1등 했다”고 외쳤다. 이어 아내와 입맞춤한 뒤 만삭의 배에도 얼굴을 가까이 대며 곧 태어날 둘째 아이와도 기쁨을 나눴다. 현지 매체들과의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골퍼로서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우승을 많이 하는 것이 목표고 개인적으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케빈 나는 이날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CC(파70·7,209야드)에서 끝난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2개를 묶어 4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그는 토니 피나우(미국·9언더파)를 4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2011년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과 지난해 7월 밀리터리 트리뷰트 제패에 이은 세 번째 우승. 131만4,000달러(약 15억6,800만원)를 받은 케빈 나는 역대 서른네 번째로 통산 상금 3,000만달러를 돌파(3,015만달러)했다.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로는 통산 8승의 최경주(49·SK텔레콤·3,248만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에서 태어난 케빈 나는 8세 때인 1991년 미국에 이민을 가 중고교 시절 아마추어 무대 강자로 이름을 떨쳤다. 2003년 말 퀄리파잉(Q)스쿨에 최연소로 합격해 PGA 투어에 입성한 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번도 투어카드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만큼 꾸준한 경기력으로 열여섯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 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1타 차로 컷 통과에 실패했지만 케빈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 앞서 캐디인 케니 함스에게 “(컷 탈락으로) 주말을 쉬었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한 그는 또 “첫 티샷 때 1번홀 티잉그라운드 옆 역대 우승자의 벽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머릿속에 새겼다”고 밝혔다. 케빈 나는 실제로 내년 이 대회에서 지난해 우승자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아래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우승 부상인 1973년형 도지(Dodge) 챌린저라는 클래식 자동차를 11년간 함께해온 캐디에게 선물했다.
이날 2타 차 선두로 출발한 케빈 나는 2번홀(파4)에서 1.5m 버디를 잡아내고 4번홀(파3)에서 10m가량의 긴 버디 퍼트를 홀에 떨궜다. 이후 13번홀까지 버디 2개와 보기 2개로 타수를 더 줄이지 못하던 그는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16번홀(파3)에서 1타를 잃은 피나우와의 거리를 4타 차로 벌리며 우승을 예감했다. 피나우가 마지막 홀을 버디로 마쳐 3타 차 선두로 맞은 18번홀(파4)에서는 3m 버디를 성공하며 4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공동 2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조던 스피스(미국)는 고향인 텍사스에서 투어 통산 열두 번째 우승을 노렸지만 2타를 잃고 공동 8위(5언더파)로 밀렸다. 디펜딩챔피언인 세계랭킹 3위 로즈는 타수를 줄이지 못해 5오버파 공동 58위에 그쳤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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