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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칼럼] 연공주의 노동시장 극복해야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기업들 고비용구조 극복 올인하며

비정규직 600만·영세업장 확대로

양극화 심화·고용안전망 붕괴 초래

개혁 기회놓치면 韓경제 미래 없어





지난 22일 배우 설리(25)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6세 연상의 대선배를 ‘~성민씨’로 표기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영화판 노동시장에서도 연공주의는 불문율인가 보다. 일부 기업에서 서열파괴를 위한 여러 시도가 있지만 대체로 잠깐의 일탈에 불과하다. 창가에서 복도까지 서열에 따른 자리 배치, 연공에 따른 임금과 승진의 결정, 그리고 생년월일에 따른 명예퇴직까지 연공주의는 직장생활을 지배하는 기본질서인 셈이다.

연공주의가 언제부터 기업 인사관리의 핵심원리로 자리 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하나의 패러다임이 돼 모든 직종으로 확산되는 데는 지난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노동조합은 지금도 연공 임금체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도 노사가 끝까지 다투는 쟁점은 호봉제 적용 여부다. 연공에 따라 임금이 오르고 승진이 되면 대부분 공평하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노사가 모두 편한 점도 있다. 그렇지만 고비용이 문제다. 외환위기 이후 고도성장이 멈추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민간 대기업들은 연공주의 인사관리에 따르는 고비용과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노동집약적인 업무를 떼어내 외부 노동시장으로 빼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과감하게 비정규직과 아웃소싱을 확대했다. 이는 글로벌 경쟁을 견뎌내는 한국 기업 특유의 인사전략이자 노동비용 절감 방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쯤은 개별기업의 효율적인 인력관리가 꼭 노동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보장할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연공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저임 불안정 노동시장의 규모가 전체 취업자의 3분의2에 달할 정도로 너무 방대하고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의 격차가 너무 커졌다. 소위 양극화와 이중구조의 문제다. 6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있고 20인 미만 기업의 근로자가 36.8%(2015년 기준)에 이른다. 자영업의 팽창도 연공주의 노동시장의 고비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팽창한 저임 불안정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제도와 인프라는 부실하기 짝이 없고 개혁 노력도 없다. 비정규직의 임금체계를 정비하고 직무향상 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은 누가 책임지고 있을까. 변변한 임금 테이블 하나 없는 2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임금은 어떻게 책정되고 인사관리는 제대로 될까. 전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의 고용안전망은 무엇인가. 독일이나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20인 미만 사업장의 비중은 20%를 넘지 않고 우리처럼 임금격차가 두 배나 되지도 않는다. 근로기준법과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지도 않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처방대로 최저임금 좀 빨리 올리고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없앤다고 시장의 큰 물결이 바뀔 리도 없다.



연공주의를 극복해야 길이 열린다. 50대 초반까지 한 직장에 근속하면 중도채용자보다 2.8배의 임금을 받는 경직적인 인사체계나 근속 20년 차의 임금이 초임의 2.5배도 넘는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 또한 출산휴가 사용비율이 30인 이상 사업체에서는 85%지만 30인 미만에서는 8%도 안 되는 불합리한 노동시장 구조(고용노동부의 17일 발표)를 개혁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연공서열을 그렇게 중시하는 나라에서 10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비율은 OECD 최저 수준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3년의 연봉을 몰아주면서까지 50대 초반의 간부급 은행원들을 명퇴시키는 패러독스는 유럽연합(EU) 15개국의 근속 20~30년 차 임금이 초임의 1.5배에 불과하다는 사실로서만 설명 가능하다. 한국 노동시장 특유의 경직성에 대한 보다 철저한 통계조사와 이론분석을 건너뛰고 선진국의 처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 공방만 키울 뿐이다. 그렇다고 연공주의 노동시장 개혁을 공공부문의 연공급체계 개편 정도로 단순화시키는 것도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는 선택일 뿐이다.

그야말로 노동시장의 패러다임과 질서를 바꾸는 한국형 노동개혁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OECD의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소득주도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2010년대 들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오는 2020년대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는데도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와 정책기획위원·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이 함께 연공주의 노동시장 극복의 길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미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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