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속에 묻혀 섞여 버린 사람과 탄약, 쇠붙이.’ 지난 28일 국방부 기자단이 찾은 강원도 화살머리고지에서는 작은 흙으로 변해가는 죽은 사람을 찾으려 산 사람들이 구슬 땀을 흘렸다.
6·25 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화살머리고지는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전사자 유해발굴이 한창 진행 중인 지역. 지난 4월 12일에는 철모 안에서는 부서진 두개골 조각이 발견됐다. 강재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상사)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철모는 충격 자체였다. 총탄인지 포탄 파편에 맞았는지 철모는 완전히 찌그러진 상태였다. 철모를 쓴 군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살머리고지의 국군 용사들은 포탄에 몸을 내놓은 채 적과 싸웠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면 진지에 숨은 뒤 자신들의 위치로 포사격을 요청해 적을 섬멸하는 목숨을 건 동굴작전이었다. 아직도 발굴 현장에서는 금속 반응이 많이 잡힌다.
백마고지 남서쪽 3km 지점에 있는 해발 281m의 화살머리고지. 화살촉처럼 남쪽으로 돌출돼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이 곳은 철원 평야를 아우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1951년 11월부터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까지 4차례나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격렬한 고지전이 펼쳐졌다. 화살머리고지를 지켰던 국군 제9사단과 2사단, 미군, 프랑스군 대대 가운데 300여명이 전사했다. 고지를 빼앗으려던 북한군과 중공군 사망자는 3,000여 명에 이른다.
취재진이 찾은 유해발굴 현장은 가파른 산 사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초발굴 현장 초입에 설치된 노란색 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뢰 제거가 완료됐음을 알리는 표시다. 6·25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사자 유해발굴의 최대 난관이 바로 지뢰 제거. 5사단 131공병대대장 이정대 중령은 각 구역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눈 뒤 ‘숀스테드’(지뢰탐지 기초장비), 예초기, 송풍기, 지뢰탐지기, 공기압축기를 차례로 사용해 지뢰를 찾게 된다며 5∼6단계에 이르는 지뢰제거 절차를 설명했다. 보호의, 지뢰화, 헬멧, 방탄조끼 등 장병들이 착용하는 장비무게는 모두 합쳐 20㎏. 장병들은 지금까지 149발의 지뢰와 2,400여 발의 불발탄을 제거해냈다.
지난달 1일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화살머리고지에서는 계속해서 많은 유해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54곳에서 325점의 유해(전사자 시신 50여 구 추정)를 발굴하고, 모두 17구의 유해를 수습해 중앙감식소로 보냈다. 특히 지난 24일에는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완전유해’도 발견됐다. 이 유해 주변에서는 국군 하사 철제 계급장과 철모 등이 발굴됐다. 유해의 쇄골 부근에서 인식표 줄도 나왔다.
발굴된 유품은 모두 2만 3,000여 점에 달한다. 그중에는 프랑스군 인식표 1점과 미군 방탄복 5점 등 외국 참전용사들의 유품도 적지 않다. 유품들은 저마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녹슨 철모에는 총알 자국으로 보이는 구멍이 6개나 뚫려 있었다. 총알이 23발이나 관통했다는 금속제 수통도 있다. M1 탄알, 60㎜ 고폭탄, MK-2 수류탄, M1 총열 등 국군과 미군, 유엔 참전국 군인들이 사용하던 무기뿐 아니라 TT탄창, 막대형 수류탄, RPG-6 대전차 수류탄 등 북한군과 중공군의 무기들도 다수 발굴됐다.
화살머리고지 능선에서는 북한군이 작년에 지뢰 제거 등을 위해 조성했던 오솔길도 보였다. 그러나 북한 군인들은 아직 유해발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남북이 갈려져 싸우며 외국군까지 피흘렸던 화살머리고지. 비무장지대(DMZ)의 짙푸른 녹음과 군사분계선(MDL)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역곡천이 내려 보이는 절경에서 죽어간 젊음의 한을 어루만지듯이 낮은 구름이 화살머리고지 위를 지나갔다. 잠시 눈을 감고 조국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철원 화살머리고지=국방부 공동취재단·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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