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에서 많이 활용되는 대화기법 가운데 비폭력 대화법이 있다.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를 중심에 놓고 주의 깊게 경청하라는 코칭 기술의 하나다.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거나 듣고 싶은 말만 듣지 말고 상대방의 어조나 말하는 속도 등에 맞춰 반응하고 상호교감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세계 분쟁지역에서 중재자로 활동하며 비폭력 대화법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지 대화 방식이 아니라 생각과 의식을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대중의 대화, 삶의 대화라고 불리는 이유다.
비폭력 대화는 무엇보다 사실과 감정, 관찰과 느낌을 확실히 구분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철저히 배제한 채 듣거나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해야 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솔직한 느낌을 표현하고 자신의 욕구나 요청을 내놓아야 한다. 이때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으면 부탁이고 그렇지 않으면 강요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을 강조해왔다. 현안마다 복잡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나 위원회를 운영해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다양한 참여 기제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정쟁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비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정 현안과 관련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며 만든 국민청원 게시판이 어느새 세력 싸움의 장으로 활용되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정치판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증오와 저주의 막말이 판치다 보니 정치 혐오만 키울 뿐이다. 상대방에게 독재라는 말을 서슴없이 갖다 붙이면서 지지층 결집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분열과 고립을 키울 뿐이다. 오죽하면 막말이 난무하는 뉴스를 접하기 두렵다는 얘기마저 나오겠는가. 정치판에서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같은 사실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판치고 있다. 게다가 쓴소리에 대해서는 대놓고 면박을 주는 행태가 반복되니 대화와 소통이 될 리 만무하다. 우리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언어혼란과 신뢰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최근에는 전직 관료나 학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섭외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언론의 속성상 정책이나 사회에 비판적인 견해를 요청해도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인터뷰 같은 공개 석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부에 대해 아무리 소리쳐도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온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괜히 쓴소리했다가 구설수에 오를까 몸을 사리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토론회나 세미나를 다녀봐도 그렇다. 학계가 줄기차게 제기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비판이 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가 학계의 충고와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아 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반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토론회는 그간의 성과를 장황하게 나열하는 자화자찬 행사에 머무르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시장의 입장이 엇갈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언어가 혼란스러우면 사회는 어지럽고 국가도 무질서하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의 언어야말로 국가 질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만약 제왕이 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바른말을 쓰도록 백성을 가르치겠다”고 답했다. 이제는 정치가 모두를 보듬어 안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화합과 통합의 정치언어가 절실한 때다. 비폭력 대화법에서는 자칼과 기린을 상징물로 삼아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자칼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 비난하는 공격적 언어로 일관하는 데 반해 기린은 사랑과 배려로 가득한 공감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칼인가 기린인가.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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