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첫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새 위원장으로 선출된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선진국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올라왔다”고 말해 ‘속도조절론’이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 위원장은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대 최저임금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이 낮았던 시기에는 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지만 우리 최저임금이 선진국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올라왔기 때문에 그 영향에 대해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영향을 받는 대상으로 노동자 외에 고용주를 꼽았다. 1차 전원회의 후 류장수 전 위원장 등 공익위원들이 대거 사퇴했기 때문에 2차 전원회의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사실상의 첫 회의다.
박 위원장은 “지난 2년간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다소 빨랐던 데는 사회적 공감대가 존재한다고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각각 16.4%, 10.9% 올랐으며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으로 2년 전과 비교해 1,880원 높다. 최저임금위는 다음달 서울·광주·대전을 방문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직접 들을 예정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법정심의 기한은 다음달 27일까지지만 오는 7월 중순께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선진국·현장·차등화’ 언급...최저임금 동결 가능성도>
‘선진국·현장·차등화’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30일 전체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세 단어에는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대한 부작용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책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첫 전체회의부터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았던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이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부터 위원회가 개최되기 전 동결 내지는 물가상승률 정도의 인상에 무게를 둬 왔다. 경영계 사이에서는 ‘동결’도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돌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최저임금위원회의 향후 일정에는 전문위원회의 보고 청취 일정 외에도 현장방문 일정이 포함됐다. 오는 4일 생계비분석·임금실태·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과 같은 정량적 분석을 받을 전문위원회를 개최한다. 현장 방문 및 공청회로는 5일 서울을 시작으로 10일 광주, 14일 대구를 방문해 각 지역의 현장 2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은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고용주에게도 커 읽어내고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현장성 있는 목소리를 들고 국민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공익위원으로서의 일”이라고 말했다. 2년간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중소기업의 볼멘소리가 높아진 만큼 부작용을 수렴하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그동안 중소기업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최저임금 차등화도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업종별 차등화는 오래전부터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 사항 중 하나”라며 “전문위원회에서 나름대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도 노사 모두 ‘속도조절론’을 강하게 의식한 발언을 내놨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지난해 최저임금과 관련해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위원 간사인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경제상황에 맞는 최저임금이 필요하다”며 “지난해와 올해의 과도한 인상은 고용 감소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 과유불급의 전형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았던 2년전과 지난해의 최저임금위원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셈이다. 이처럼 올해는 위원회 초반부터 경영계의 입장이 반영되는 식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내년도 최저임금은 동결 내지 높아야 3~4% 정도의 인상에서 멈출 것’이라는 관측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최근 청와대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3~4% 인상설이 나와 ‘가이드라인’ 논란이 인 가운데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전날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경제·고용 상황, 생계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최저임금 심의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당시 위원회를 보이콧했던 민주노총의 행동은 노동계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인상률이 낮게 형성돼도 강력 투쟁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판을 엎으면 오히려 노동계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경기 악화가 지표로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실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며 “다만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 인상분이 줄어든 만큼 합리적인 인상률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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