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길이 원칙의 중요성이 확인된 셈입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자 ‘팔길이 원칙’을 언급했다. 팔길이 원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예술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예술활동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도록 팔길이만큼 거리를 둔다는 의미다. 오 원내대표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배우 송강호씨와 함께 명문극단인 연우무대에서 활동했다. 봉 감독과 송씨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라 활동이 제한된 문화예술인이라는 점에서 오 원내대표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국회 내 ‘기생충’ 논란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촉발시켰다. 봉 감독의 수상 다음날인 지난 27일,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에는 축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나 원내대표도 축하의 말을 전했지만 ‘리플리증후군’ 발언이 논란이 됐다. 나 원내대표는 “알랭 들롱도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그의 역할이 거짓말을 진실로 믿는 톰 리플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생각난다. 지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데 이렇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리플리증후군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 문화예술계에서는 황금종려상마저 정쟁의 소재로 활용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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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화예술계 출신인 장정숙 민주평화당 의원도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정쟁에 가세했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면 우리는 봉준호라는 거장과 황금종려상을 놓칠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봉 감독과 주연 송강호씨가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지나온 어두운 터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그 시절을 주도했던 이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감 놔라 배 놔라 떠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봉 감독은 2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시간은 한국 예술가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잠기게 한 악몽 같은 몇 년이었다”고 말했다. 그 악몽을 깨고 봉 감독은 한국 영화사의 축복이 됐지만 여의도 정가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에 머물러 있다.
/방진혁기자 bread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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