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과 정책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차이잉원이 만약 내년 재선에 성공한다면 상당 부분은 시진핑 덕이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내년 1월11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대통령)선거에 대한 분석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최근 인기를 회복하며 재선을 향해 일말의 희망을 키우는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맞짱’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이 총통과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 참패로 심판을 받았다. 대만 내 22개 현·시 가운데 15곳을 챙긴 야당 국민당에 정국 주도권을 넘겨줬다. 차이 총통은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에서 물러났고 남은 임기 1년이 레임덕에 빠지면서 재선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집권당이 직면한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대만의 경제사정 때문이다. 행정원 주계총처(통계청)에 따르면 대만 경제성장률은 지난 2017년 3.08%에서 지난해 2.63%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 2.19%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 1·4분기 성장률은 1.71%였다. 미중 무역전쟁의 유탄이 대만을 강타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독립파’ 차이 총통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시 주석이다. 시 주석은 올 초 “대만 통일을 위해서는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이라는 초강경 발언을 한 후 인민해방군을 대만 인근으로 이동시키고 훈련도 확대했다. 이것이 대만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대만인들은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이른바 ‘독립’도 싫어하지만 중국 공산당에 예속되는 것은 더 싫어한다고 분석한다. 현재 중국은 홍콩·마카오식 ‘일국양제’를 받아들이라고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차이 총통은 초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미국의 최신무기 수입을 늘리는 등 국방력을 강화하는가 하면 5월28일 대만 국토방어훈련 ‘한광 35훈련’ 기간에는 군복 차림에 군화까지 착용하고 전투기 비상활주로 이륙 특별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20%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최근 43%로 회복됐다. 총통 재선에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됐다. 판스핑 대만국립사범대 정치연구소 교수는 “유권자들은 대만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차이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만 대선을 반년 정도 앞두고 중국이 무작정 대만을 압박하기도 어렵게 됐다. 자칫 차이 총통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6년 대선 당시에도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의 ‘대만국기(청천백일기) 사건’에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오히려 차이 총통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대만 경제도 순풍으로 바뀌는 조짐이다. 주쩌민 주계총처 주계장(통계청장)은 “내수가 살아나고 있고 또 해외 대만 기업의 리쇼어링(본국회귀) 효과가 이어지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바오얼(保二·2% 이상)’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물론 차이 총통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야당 쪽에서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선 주목되는 이는 ‘대만의 트럼프’로 불리는 궈타이밍 훙하이그룹(폭스콘) 회장이다. 맨손으로 세계적 기업을 일군 그는 4월 국민당에 가입하고 대선 참가를 선언하면서 대만인들 관심을 집중시켰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한류’ 돌풍을 일으킨 한궈위 가오슝시장도 출사표를 던졌다. 궈 회장과 한 시장의 공통점은 ‘경제’에 올인한다는 것이다. 한 시장은 가오슝시장 당선 이후 경제제일주의를 내걸고 중국과도 교류의 폭을 넓혔다. ‘독립’에 반대하는 국민당은 중국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의식해 중국과의 통일 논의는 거부하고 있지만 경제교류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차이 총통 외에 민진당 쪽의 믿는 구석은 라이칭더 전 행정원장(국무총리)이다. 의사 출신인 그는 입법의원(국회의원)을 12년, 남부 타이난시장을 7년간 지낸 후 2017년 행정원장이 됐다. 지난해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여전히 대만 국민들의 신뢰가 높다. 그는 차이 총통보다 더 독립파로 알려졌다.
현재까지의 판세는 야당인 국민당이 앞선다. 5월28일 공개된 대만 빈과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당에서 궈타이밍이나 한궈위 중 누가 나오더라도 민진당 후보를 이길 것으로 전망됐다. 국민당 후보 중에서는 4월 궈 회장이 깜짝 출마선언을 할 때만 해도 한 시장을 앞섰지만 최근에는 한 시장이 역전한 듯하다.
민진당에서는 라이 전 행정원장이 차이 총통을 다소 리드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직 총통의 프리미엄을 가진 차이 총통이 열세를 만회하고 있다. 이외에 무소속인 커원저 타이베이시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집권 민진당은 여론조사를 통해 오는 6월19일 당 대선후보를 확정 발표한다. 곧이어 국민당도 후보를 결정하면 대만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
대만 총통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1996년 이후 총통은 리덩후이(국민당), 천수이볜(민진당), 마잉주(국민당), 차이잉원 등 모두 4명이며 앞서 3명은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도 연임에 성공하면 그 ‘전통’을 잇게 된다.
결국 문제는 다시 경제다. 블룸버그통신은 “경제성장률이 유지되는 가운데서도 임금정체와 소득불평등 확산으로 젊은 층의 실망감이 커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차이 총통의 재선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