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 최고 명문대학인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무지와 편협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했다.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보호무역주의와 국경장벽 건설 등 트럼프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겨냥한 뼈있는 비판으로 하버드 졸업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같은 날 미 콜로라도주의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축사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거듭 강조하며 대조를 이뤘다.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하버드대 졸업생들 앞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 동독의 삶을 소개하며 축사를 시작했다. 그는 장벽 붕괴 이전에는 장벽 저편의 “자유로부터 돌아서야만 했다”며 “베를린 장벽이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이는 멕시코를 통해 들어오는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장벽을 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메르켈 총리는 “벽은 허물어질 수 있고 독재는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졸업생들에게 다자주의와 개방적 사고를 주문하며 “보호무역주의와 무역분쟁은 자유무역,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토대를 위협한다”고 연설을 이어갔다. 중국·유럽연합(EU) 등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며 글로벌 무역분쟁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을 보다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평소 잘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성향을 꼬집으며 “압박을 받는 상황에도 늘 첫 충동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졸업생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같은 날 하버드대에서 3,200㎞가량 떨어진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의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최고의 우위를 되찾아야 할 때”라며 “다른 국가를 위해 미국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세계주의·다자주의의 가치를 역설한 메르켈 총리와 상반된 축사를 전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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