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서도 ‘검찰이 왜 이렇게 활동을 안 하냐’고 한다는데, 이제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죠. 경찰이 국민을 만날 때 그 사이에 있던 검찰의 역할을 들어낸 거니 이제 ‘경찰과 국민의 문제’가 된 겁니다. 검사가 입을 열면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지 않나요.”
검경 수사권 조정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대검 간부의 말이다. 검찰권이 처음으로 조정의 도마에 올랐지만 대검찰청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 올라탄 게 결정적이었다. 경찰과 청와대가 합작한 검찰 개혁안 논의에 검찰이 낄 자리가 없다는 자조가 만연하다.
문제는 현행 개혁안 논의에서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검찰 힘 빼기’에 초점이 모이면서 개혁안이 시행되면 국민이 어떤 상황을 겪게 될지에 대한 고민은 실종됐다. 최일선에서 국민과 만나는 경찰이 부정청탁을 받고 수사를 자체 개시하거나 종결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청와대로 첩보를 올리는 정보경찰과 정치세력의 결탁은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검찰 신문조서의 효력이 상실되면 재판에서 방어권 행사는 어떻게 하며 법원 업무 마비는 어떻게 하나. 공수처가 ‘선호되는 검사·수사관 파견지’로 전락하면 그땐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 개혁이 국민이 아닌 정권 재창출을 위한 과제가 됐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검찰이 내는 쓴소리는 ‘개혁의 대상이 내는 잡음’으로 치부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을 필두로 송인택 울산지검장 등 검찰조직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상실된 개혁안”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겸허하라’는 정부 주문 앞에서 멈췄다. 한 검찰 간부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들이 청와대에 ‘충성 맹세’를 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마당에 조정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법무부 장관이 뒤늦게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이마저도 기존 조정안이 부실하다는 자인과 다르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국민 앞에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곳이 정말 검찰뿐일까. 검찰 개혁은 칼을 휘두르는 법 집행기관이 아닌 사법의 수요자인 국민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뻔히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밀어붙여야 할 ‘금과옥조’가 아니다. 정치적인 목적에 등 떠밀린 검찰 개혁의 후과(後果)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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