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혼분담금 500억달러(약 59조원)를 내느니 나라면 ‘노딜’을 택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국빈방문을 위한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부터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듯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외교 결례라는 비난을 무릅쓴 그의 발언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원하는 대로 협상을 이끌지 못하면 아무런 합의 없이 노딜 브렉시트에 나서야 한다고 부추기는가 하면 브렉시트 강경론자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을 영국의 차기 총리로 낙점하는 듯한 발언으로 영국 정가를 헤집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의 노딜을 부추기는 데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전개할 무역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는 7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총리의 사임을 앞둔 영국의 ‘리더십 공백기’에 굳이 방문 일정을 강행하는 것 역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브렉시트 난맥상을 활용해 미국의 국익을 챙기려는 외교적 셈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일(현지시간)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영국 국빈방문 기간에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강경한 입장 주문 등 일부 부수적인 안건을 제외하면 브렉시트와 이후 미국·영국 간 무역협상을 주요 의제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출국 전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그 포석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노딜 압박에 깔린 가장 중요한 의도는 브렉시트 이후 미국과 영국 간 교역 확대다. 영국이 아무런 준비 없이 EU를 탈퇴할 경우 영국은 당장 대규모 식량난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기준 영국의 수입 상대국(지역) 가운데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53%로 압도적 1위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식량에 대한 EU 의존도도 30%에 달한다. 이처럼 EU가 영국의 식량 조달원으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향후 로드맵 없이 영국이 탈퇴를 강행하면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기면서 가격이 30% 이상 폭등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노딜로 인한 EU의 공백을 미국이 채우면서 미국산 농식품의 대규모 수출 가능성을 열겠다는 계산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농가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영국으로의 농산물 수출 증가는 오는 2020년 대선 가도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좋은 선전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외교 셈법에 부응하듯 우디 존슨 주영 미국대사는 이날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산 염소소독 닭고기에 대한 영국의 수입금지 조치를 브렉시트 이후 무역협상에서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 닭고기는 안전하다. 매년 500만명의 영국인들이 미국을 방문하지만 그들이 닭고기에 대해 불평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존슨 대사는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대한 미국 접근도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노딜 브렉시트 이후 EU 국가들이 의약품 공급을 차단하는 등의 상황이 빚어지면 NHS가 가격결정권자로서의 역할이 약화될 것”이라며 “이 틈을 타 미국 제약산업을 키우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 압박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단일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의견도 있다. 브렉시트 혼란으로 인한 EU의 균열은 외려 미국 주도의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가 다분한 트럼프 대통령의 2박3일간 영국 방문을 두고 런던을 중심으로 반(反)트럼프 시위가 거세지는 모양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 기간 동안 런던 상공에는 ‘베이비 트럼프’ 풍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 당시 반대 시위와 함께 등장했던 이 풍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기 모습으로 기저귀를 찬 채 스마트폰을 들고 화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영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반대 운동가들은 이번에는 기존보다 5배나 큰 ‘초대형 베이비 트럼프’ 풍선을 앞세워 반트럼프 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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