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평시 감독기간이어서 사업장을 방문해 사업주·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임금 체불은 없는지, 최저임금 이상으로 임금을 주고 있는지, 성희롱은 없는지 등을 조사해요.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정조치를 요구하죠.”
지난 5일 박해정 근로감독관과 송재준 감독관은 노동질서점검표를 들고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을 찾았다. 실제로 사업장에서 노동관계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음식점에 방문하기 직전까지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임금 체불, 퇴직금 미지급 등의 신고를 받느라 분주했다. 박 감독관은 “평소에는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사건을 신고받아 조사하는 업무를 한다”며 “사건 조사를 위해 사업주를 지명수배하거나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반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경찰처럼 사건을 수사하고 노동관계법 관련 위반 혐의가 포착되면 피의자를 고발할 수 있는 이들은 바로 고용노동부의 특별사법경찰이다. 수년 전만 해도 ‘경찰도 아닌데 왜 (수사에) 협조해야 하느냐’며 거부하는 사업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더 바쁜 ‘노동경찰’의 세계를 서울경제가 들여다봤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 크게 늘어=“임금 체불과 관련한 사건의 조사는 경찰이 아닌 특사경 근로감독관이 할 수 있어요. 도주 우려가 있는 사업주에게 수갑을 채우고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압수수색도 진행합니다.”
15년째 특사경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해온 김승래 서울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2과장은 자신을 노동경찰이라고 소개했다.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에 관련한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기 때문이다.
신고되는 사건의 90%는 임금 체불, 퇴직금 미지급이지만 최근에는 미투 여파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신고가 눈에 띄게 늘었다. 김 과장은 “업무 외적인 상황에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이 수사하지만 직장 내 업무와 관련해 일하던 중 발생한 성희롱 사건은 근로감독관이 조사한다”며 “최근 5개월 동안 서울청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80여건으로 2년간 접수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특사경 근로감독관이 일하는 모습은 일반 경찰과 비슷하다. 신고가 들어오면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사업주에 출석을 요구한다. 사업주가 계속 출석을 거부하면 근로감독관은 체포영장을 신청한다. 임금을 누적 체불하거나 사업주가 근로자를 착취하는 반사회적인 행위를 한 경우 등일 때 영장이 신청된다.
경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용하는 무기다. 테이저건·삼단봉 등이 아닌 오로지 수갑만 사용할 수 있다. 김 과장은 “사업주가 잠적해 출석하지 않는 경우 통신영장을 받아 휴대폰 기지국을 통해 위치를 파악하고 잠복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보통 10건 중 1건 정도 사업주가 거칠게 항의하는 편이라 수갑 외 무기의 필요성은 딱히 느끼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1년 넘게 걸리는 복잡한 수사도=특사경 근로감독관의 활약 덕에 근로자들이 밀린 월급을 받고 억울함을 푼 사례는 많다. 보험사에서 근무한 20대 A씨는 회식 자리에서 상사, 직장 동료 등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근로감독관을 찾았다. 근로감독관이 노동법을 들이밀며 끈질기게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해 직원에게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근로감독관은 최근 한 TV 드라마에서 주인공 ‘조장풍’의 극중 직업으로도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오히려 실제 근로감독관을 더 힘들게 하는 점도 생겨났다. 드라마를 본 일부 시민들이 “TV에서는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던데 내 사건은 왜 이리 처리가 늦냐”며 항의성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수일 만에 해결되는 간단한 사건도 있지만 해결에 1년 넘게 걸리는 복잡한 사건도 있다”며 “끝까지 사건을 놓지 않고 해결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강남의 한 증권회사에서 청소하는 B씨에게 절도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월급을 주지 않아 신고된 일도 있었다. 새벽7시부터 아침10시까지 3시간씩 청소하는 할머니가 컴퓨터를 훔쳤다는 이유에서다. 근로감독관이 지점장을 불러 할머니가 컴퓨터를 훔친 증거가 있는지, 증거도 없는데 월급을 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꼬치꼬치 물었다. 이 같은 조사 덕에 B씨는 누명도 벗고 월급도 받았다. 박 감독관은 “근로감독관 덕분에 밀린 월급을 받아 감사하다며 인사를 받을 때도 있다”며 “업무가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인력 확대에 별도 채용 고려해야=경기 불황, 인건비 상승 등으로 갈등이 늘면서 근로감독관의 필요성은 커지는 분위기지만 현재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전체 근로감독관은 1,311명으로 한 사람당 1,488개 사업장을 맡는 것으로 집계됐다. 근로자 1만명당 감독관 수도 독일이 1.72명, 프랑스가 0.92명인 데 비해 한국은 0.67명에 그친다. 자신의 사건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근로자들의 마음과 달리 수사할 인력은 태부족인 셈이다.
전문성을 위해 별도의 직렬로 채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근로감독관으로 배치되면 그 후에 특사경으로서의 교육과 연수가 이뤄진다. 당초 공무원 업무를 생각하고 취업했다가 특사경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도 발생한다. 김 과장은 “과로사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공무원 준비생들이 기피하는 부처의 하나로 꼽힌다고 들었다”며 “별도의 채용으로 특사경 근로감독의 전문성, 직무 적합성을 개선하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