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산업체들의 차세대 첨단 수직이착륙기 한국 수출을 위한 입질이 시작됐다. 미군의 모든 헬리콥터를 대체할 차세대 후보 2개 기종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한국에도 합작을 포함한 기술 수출 의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군의 차세대 헬기가 한국군에도 도입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특히 한국군이 기존 보유 헬기의 성능 개량 사업을 최소화하는 대신 국산 수리온 헬기를 추가 발주하려는 계획과 차세대 첨단 헬기 기술 이전이 맞물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유럽 메이커들도 도전장을 낼 것으로 알려져 물밑 탐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외 업체들은 오는 10월 중하순 열릴 예정인 서울국제우주항공전시회(ADEX)에 실물 축소모형과 개념연구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차세대 헬기 대체 사업은 미군의 물량만 약 1,100억달러로 21세기 최대 규모의 경쟁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미군, 차세대 헬기 개발 경쟁 한창=미국은 각 군이 사용 중인 기존 헬기를 이르면 2020년대 중반부터 차세대 기체로 교체할 계획이다. 각종 파생형을 합치면 교체 수요는 미군이 도입할 물량만도 3,000대를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미 육군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이 사업을 둘러싼 경쟁구도의 승리자로는 2개 미국 항공사가 유력하다. 시코르스키·보잉이 개발 중인 SB-1 디파이언트(Defiant)와 벨사가 제작한 V-280이 경합 중이다. 두 기체의 공통점은 기존 UH-60 시리즈 헬리콥터보다 대형이며 빠르다는 것. 분명한 차이도 있다. SB-1이 전통적인 헬리콥터를 발전시킨 반면 V-280은 주회전날개의 각도를 수령과 수직으로 변형시켜 짧은 이착륙과 고속, 대량 수송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틸트로터(Tilt Rotor)기다. 외양이 V-22 오스프리와 닮았다.
◇헬기냐, 수직이착륙기냐 선택 기로=시코르스키·보잉의 SB-1의 특징은 두 가지. 첫째, 2개의 주회전 날개가 반대방향으로 도는 이중반전 로터를 갖고 있다. 둘째, 수직꼬리 뒤에 고속 프로펠러가 달렸다. 지금까지 나온 헬기의 대부분은 수직꼬리날개에 작은 프로펠러를 달아 자세를 유지하고 헬기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억제해왔다. 하지만 SB-1은 동체 끝단에 고속을 내기 위한 프로펠러를 붙였다. 이중반전 로터와 후부 프로펠러로 양력과 추진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중반전 로터는 러시아제 헬기가 주로 사용했으나 미군의 주력 헬기로는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혁신적인 로터 블레이드 설계와 배치 덕에 이 헬기는 시속 46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최대 시속이 290㎞인 UH-60 블랙호크 헬기보다 훨씬 빠르다. 시코르스키·보잉의 자료에 따르면 전투원이나 화물,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 공간이 블랙호크보다 60% 넓고 공중 기동에서도 50% 이상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조종사와 항법사 2명 외에 완전무장한 병력 12명을 태울 수 있다. 첫 비행이 올해 3월이어서 경쟁 기종보다 늦지만 지난 1980년대 초반부터 XH-59, X2 데몬스트레이터, S-97 등을 연구, 제작한 경험이 쌓여 있어 기체 완성도는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벨사의 V-280은 미 해병대가 실전 배치해 운용 중인 V-22 오스프리처럼 틸트로터기다. 이착륙할 때는 메인 로터가 수직을 향하고 비행할 때는 수평으로 변해 고속을 내는 게 최대 특징이다. 헬리콥터와 프로펠러 항공기의 장점을 결합해 순항속도 519㎞로 비행한다. 최대 속도는 600㎞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헬리콥터로서는 도달이 불가능한 속도다. 승무원 4명에 무장 병력 14명을 태울 수 있다. 2017년 말 처녀비행에 성공, 상대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다. 미 해병대와 해군·공군 외에 일본육상자위대가 채용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인도와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가 도입을 검토 또는 추진 중인 V-22 오스프리(24명 탑승 가능)보다 작지만 가격과 운용비는 훨씬 낮다고 한다. 미 해병대에 납품되는 오스프리의 가격은 대당 약 800억원 수준이다.
◇한국에도 제휴 의사 타진=미 육군은 약 2,000대를 운용 중인 UH-60을 일부만 개량해 계속 운용하고 주력은 이들 2개 기종 중에서 선택해 2020년대 중반 이후부터 배치할 계획이다. 육군에서 결정되면 대잠 헬기를 대량 운용 중인 미 해군의 계약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이미 다양한 파생형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대목은 한국에도 최근 제휴 의사를 타진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23일과 24일 육군항공학교에서 열린 무기발전 세미나를 통해 국내 관계기관과 관련사, 기술진에 한국과 얼마든지 제휴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협력 형태는 직접 수출과 공동 개발은 물론 기술제휴, 한국형 기체 개발 등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AW사도 도전 의향=미국 양대 회사들의 움직임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유럽도 뛰어들 의사를 나타냈다. 우리나라에 해상작전헬기를 수출하는 이탈리아·영국 합작법인인 레오나르도사는 틸트로터기인 AW-609 모델을 내세워 한국 시장에 접근할 예정이다. 최고속도 509㎞에 작전반경도 여타 기종에 비해 뒤질 게 없지만 기체가 다소 작은 편이다. 승무원 2명에 무장병력 6명 또는 9명을 태울 수 있다. 초도 비행은 2003년이지만 개발기간이 길어 2020년부터 생산 라인이 가동될 예정이다. 당초 벨사와 기술제휴로 개발한 모델(AB-609)로 출발해 지분 관계가 변경되며 AW(아구스타웨스트랜드)-609로 바뀐 모델이어서 기술적 차별점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이전과 가격 등의 조건 제시에 따라 변수가 될 수도 있는 기체로 평가된다.
◇한국군 헬기 부대 재편에 영향 미칠 수도=미군의 차세대 헬기 사업에는 이들 말고도 수 개의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양대 메이커가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장 선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군 주력 헬기의 수명주기를 감안할 때 미군에 납품될 차기 헬기의 1차 수요가 끝나는 시기에 한국군용 차세대 헬기를 수출하거나 기술 이전이 가능하다고 봤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 군 내부에서 일고 있는 수리온 헬기 추가생산안과도 맞물려 떨어진다. 대한항공이 면허 생산해 우리 군이 운용 중인 UH-60 헬기 가운데 특수작전용 일부 기체만 현대화 개량을 실시하고 신규 수요는 수리온으로 대체하면 미국 업체들에 돌아갈 물량도 적어지기 마련이다. 개량 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적어진다면 아예 차세대 헬기 개발과 공동생산에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리온 헬기 추가 생산과 미군용 차기 헬기에 준하는 한국형 차기 헬기가 연구개발 대상으로 선정된다면 우리 군의 헬기 세력의 면모도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수리온 추가 생산 여부는 3년 후부터 본격 논의되고 한국형 차세대 헬기 개발은 2020년대 중후반부터나 가시권에 들어온다는 얘기지만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10월 열릴 ADEX에서 기체들의 모형 전시를 통해 차세대 헬기 개발을 향한 대장정이 눈에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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