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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진짜 위기는 팔 물건 없다는 것...반도체 이을 먹거리 빨리 찾아야"

<곽수종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AI·전기차 등 이미 美中이 선점

4차산업혁명 구호만 외치지 말고

양자컴퓨터 필수 냉각기술처럼

좀 더 세부적으로 접근할 필요

과감한 이민 수용 생산성 높이고

저소득층 사회안전망은 확대를





곽수종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10~20년 전에 반도체 다음으로 수출할 기간산업을 준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 수출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이 맞닥뜨린 위기의 본질은 내다 팔 물건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주기자


곽수종 한국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06년 미국에 머물면서 워싱턴 정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는 이때 금융위기를 몰고 온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에 대해 미국 의회가 주시한다는 것을 눈치챘고 이를 계기로 연구에 나서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미중 갈등이 점점 더 커지면서 또 다른 글로벌 위기가 오지는 않는지 염려하고 있다. 그에게 금융위기가 한 번 더 올 가능성에 대해 묻자 “가능성이 있으며 온다면 중국에서 올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중국발 금융위기 시나리오는 모두 알고 있는 것 아니냐”며 “모두 알고 있으면 위기가 아니다”라는 반전을 보였다. 그가 정작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니라 한국이 세상에 내다 팔 물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반도체를 넘어 앞으로 수십년간 우리를 먹여 살릴 물건이 무엇인지 빨리 찾아야 한다”며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AI)처럼 남들이 선점한 큰 분야가 아니라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인공지능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 개발하기 어려운 양자컴퓨터 대신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냉각기술을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수종 조지메이슨대 교수./성형주기자


-2008년 금융위기를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나.

△삼성경제연구소에 근무하던 2006년 미국 워싱턴 분소를 만드는 임무를 맡아 워싱턴에 나갔다. 당시 의회에서는 상·하원을 막론하고 이런저런 청문회가 자주 열렸는데 경제와 관련한 청문회만 열리면 반드시 거론되는 이슈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경제 관련 청문회에서는 GM·크라이슬러·포드 등 자동차 3사에 정부 지원금을 주는 문제와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문제도 크게 거론됐는데 끝까지 사라지지 않은 이슈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적어도 미국 의회나 행정부 인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청문회에 참석한 인사들의 발언과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냈고 이를 연구소에 보고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무엇이 문제였나.

△단적인 예로 노 다큐먼트 모기지라는 상품이 있었다. 이 상품은 말 그대로 문서 한 장 없이 소비자가 대출을 신청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이런 상품이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요즘 미중 무역갈등이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요인으로 떠올랐다.

△미중 무역분쟁의 결론은 상당 기간 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G1의 자리를 G2로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중국은 G1을 인정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우리는 미중의 이런 대치 상황이 오래갈 것으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 당장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할 것이다. 미중이 보복에 재보복을 하면 중국은 자본시장이 부실해지고 미국은 소비자들이 높은 물가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수출과 내수 양쪽으로 하방 압력을 줄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 1%대 저성장으로 가기까지 불과 5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화웨이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며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다. 우리는 어느 쪽에 붙어야 하나.

△1975년 1차 오일쇼크가 왔을 때 우리는 오일달러를 벌어 극복했다. 그 전에 베트남전 참전이 있었기에 미국이 우리의 중동 진출을 간접 지원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데는 중국의 도움이 컸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연간 200억달러가 넘는 중국 수출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이렇게 한국 경제는 외생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 변수가 과거에는 미국 하나였지만 지금은 중국이 추가됐다. 국제관계의 변화를 읽어내 전략적으로 국가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갈등이 점차 커지면서 10년 전과 비슷한 금융위기가 한 번 더 올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맞는 얘기다. 금융위기가 온다면 중국이 진원지가 될 것이다. 중국의 그림자금융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계기로 인해 그림자금융의 부실이 터지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올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많은 사람이 얘기했고 일리 있는 분석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면 위기가 아닐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위기 가능성이 있나.

곽수종 조지메이슨대 교수./성형주기자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어서 수출해야 하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지하자원과 원자재를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 이를 가공한 뒤 수출해 돈을 버는 제조업 수출 경제다. 지금 그 수출이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다. 수출이 줄어든다는 것은 세상에 내다 팔 물건이 없다는 뜻이다. 이게 우리의 진정한 위기다. 수출이 어려우면 내수라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쉽지 않다. 내수를 떠받치는 한 축인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또 다른 축인 투자는 기업이 정부 눈치를 보며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수출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일은 역사가 있다. 지금 우리 수출의 주력인 반도체산업은 1974년 삼성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반도체로 이름을 바꾸면서 시작했다. 어떤 산업이건 한 국가의 기간산업이 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의 투자기간과 막대한 자금 투입이 있어야 한다. 삼성의 D램 반도체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게 1992년이니까 반도체산업을 시작한 지 거의 20년이 지나서 비로소 기간산업이 됐다. 지금 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10~20년 전 반도체처럼 투자에 나선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수출 감소는 이미 10~20년 전에 예고돼 있었다.

-반도체산업은 더는 우리의 주력산업 역할을 못하나.

△중국이 반도체에 투자를 시작한 지 15년이 됐다. 그들의 반도체 굴기를 고려하면 곧 따라잡힐 것이다. 우리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D램 반도체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자동차도 중국에 앞자리를 내어준다고 봐야 한다. 이게 합리적 가정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나.

△4차 산업혁명이라면 AI·전기차·사물인터넷(IoT)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이 가운데 앞장 서서 나가고 있는 분야가 있나. AI만 해도 우리에게 미래 산업으로 인식된 것은 2016년 이세돌 바둑기사와 바둑 AI인 알파고가 바둑을 둔 때부터다. 선진국은 훨씬 전에 시작했고 이미 저만치 앞서 있다. 전기차는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과 중국에도 한참 뒤져 있다. 지금 세계는 양자컴퓨터를 얘기하고 6G 이동통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AI에 투자한다고 한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통일을 포함해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중국의 파병 결정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과거 한때 자기네 땅이었다. 중국은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은 그동안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와주지 않았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경우 그 영향이 동북 3성에 미쳐 정치적으로 동요할 것을 두려워했다. 이런 역사를 볼 때 중국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 여러 가지 남북의 경제협력 구상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중국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남한과 북한 차원에서 경제협력을 확대하려고 한들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1960~1980년대 미국을 돌아보자. 그때 미국의 최우선 가치는 ‘위대한 미국’,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미국은 이를 위해 크게 3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첫째가 노동생산성을 높여 산업발전을 하기 위한 이민법 개정이다. 둘째 최저생계층과 노인 계층에 대한 의료 지원이다. 셋째 흑백 인종 갈등을 끝내고 새로운 화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이민의 문을 과감히 열어 생산성을 올려야 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해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사회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각자가 열정을 갖고 경쟁하는 곳이며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공통분모를 뽑아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다.

-이민 확대 정책은 일자리를 줄이는 양면성이 있지 않나.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반도체 이후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이민과는 상관이 없다. 미국은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1960~1980년대에 1인당 소득이 1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뛰었다. 이때 한국·일본·중국 등에서 많은 사람이 이민을 갔다. 그들은 모두 그 나라에서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우리가 문호를 개방하면 여러 나라에서 인재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생산성을 올릴 것이다.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이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경제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확 밀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정책이 계속 진행된 데는 공무원들의 정책 매너리즘 탓이 컸다. 청와대가 밀어붙여도 공무원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기를 쓰고 막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사실 막을 이유도 없다. 경제부총리가 정치할 생각이 있다면 막다가 싸우고 사표를 쓰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지금 얘기한 근본 대책은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반도체의 뒤를 이을 산업은 없나.

△구호를 버려야 한다. 분명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대신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나 전기차 등 남들이 익히 알고 있는 대분류 대신 한걸음 더 들어간 소분류를 지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가 아닌 원자를 기억소자로 활용하는 양자컴퓨터를 만들려면 절대온도까지 내려가는 냉각기술이 필수적이다. 대분류인 양자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것은 구호에 불과하다. 어차피 불가능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 소분류인 냉각기술을 파고들면 반도체의 뒤를 이을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hanks@sedaily.com

he is

1962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캔자스대에서 파생금융연구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선문대 국제경제학과 전임강사, 1998년 캔자스공공시설위원회(Kansas Corporation Commission) 책임연구원, 2005~2012년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실 수석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2005년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로 급등할 것을 예상했다. 2006년 12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가능성을 주장했다. 현재 한국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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