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여간 중국에 화장품을 수출해온 경험과 오랜 유통 노하우를 바탕으로 K뷰티의 한 축을 담당하겠습니다. 전 세계 50여개국에 ‘테르시아’ 지사를 만들어 ‘테르시아 실크로드’를 여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화장품 브랜드 ‘테르시아’로 알려진 임태열(45·사진) 태인 대표는 16일 서울경제와 만나 이 같이 포부를 밝혔다. 매장 직원으로 일하며 도전의 경험을 쌓았던 20대 청년은 이제는 어엿한 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20년 가까운 세월에는 빛나는 성공과 뼈아픈 실패가 함께 있었다.
“28살에 서울로 올라와 보험영업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화장품 매장에 근무하게 됐어요. 사장님이 저를 처음 보시더니 매장 앞 길거리에 놓은 의자를 가리키며 “의자 위에 올라가서 장사를 해보라”고 하더군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포기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의자 위에 올라갔죠. ‘나만 빼고 (모든 상품이) 전부 1,000원’이라고 외쳤어요. 부끄러웠지만 죽기 살기로 외쳤고, 그러면서 사업이라는 게 뭔지 깨달았습니다. 밑바닥부터 배운 셈이죠. 디스플레이(전시), 사입, 직원 관리까지 2년을 버티니 백화점에 취직하게 됐고 어느새 행사까지 담당하게 됐습니다.”
그는 사업 수완이 남달랐다. 당시 동료 직원보다 2년 앞서 백화점 매장 관리란 중책을 맡게 된 것도 그의 남다른 수완 덕분이다. 그가 손만 대면 판매 기록을 세우니 한 백화점에서는 그에게 매장 10곳을 맡겼다. “10개 매장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군요. 그만두고 지방에서 열리는 5일장을 돌며 화장품을 팔아봤어요. 직접 현장에서 영업을 해보니 오히려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서울의 대형 화장품 매장을 인수했고 하루 매출이 2,000만원을 넘을 정도로 대박이 났습니다. 업계 최고였죠. ”
임 대표는 중간 도매상을 끼지 않고 화장품을 직매입해 원가 부담을 줄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크지 않았기에 단일 품목이 아닌 여러 브랜드를 한 매장에서 구매하는 접근법은 주효했다. 하지만 성공은 과욕을 불렀다.
“2006년쯤 청량리에서 24시간 도소매를 했어요. 처음에는 잘 됐죠. 자리가 좋았거든요. 하지만 매출이 꺾였고 1,700만원에 달하는 월세가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1년 만에 큰 손해를 입고 털었죠.”
임 대표가 재기를 위해 뛰어든 시장은 유명한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일명 ‘왕도매’다. 당시 “화장품 사업을 하려면 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이 임 대표의 사업 방향을 바꿨다. 이때 만들어진 브랜드가 바로 ‘테르시아’다. 임 대표는 테르시아를 시작으로 2014년 디팡세, 닥터테르굼 등 7개 특허상표를 획득했다. 1년 뒤 동대문 직영매장을 열었고, 2016년에는 면세점에 테르시아를 입점시켰다.
2017년은 임 대표에게 가장 바빴던 한 해다. 태인을 설립하고 스킨푸드의 중국 수출 총판 자격을 얻었다. 미국, 유럽,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 러시아도 거래를 텄다. 홈앤쇼핑과 애경산업, 하나은행 등 다양한 국내 기업과 거래관계를 맺었다.
한류 붐을 타고 화장품 사업도 몇 년째 순항 중이다. 하지만 임 대표는 결코 호락호락한 시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남북 경색, 사드 보복, 마유크림 성분 논란 등 그 역시 크고 작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버텨올 수 있었던 비결은 ‘신뢰’라고 말한다.
“한번에 3억원을 날린 적도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사업을 하면서 친인척에게 돈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돈이 들어오면 거래처 물품 결제부터 합니다. 우리 업계에서는 사업이 망하면 소리 소문 없이 잊혀지는 분들이 많아요. 전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도 무조건 받습니다. 그게 제 약속에 대한 책임이자 고객과 파트너에 대한 신뢰입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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