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김제시 백구면 월봉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플래카드에는 ‘숨 막혀서 못살겠다’ ‘희귀식물 서식지 보존하고 생태공원 조성하라’ ‘타당성도, 경제성도 없는 스마트팜 전면 재검토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농민단체와 환경단체 등이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에 반대하며 내건 것이다. 마을 안쪽의 백구 지지제를 둘러보니 전봇대가 뽑혀나간 채 풀만 무성하게 자란 공간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조성될 계획이지만 지역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김제시는 21㏊ 규모의 부지에 631억원을 들여 오는 2021년까지 임대형 스마트팜과 실습농장, 실증단지 등을 짓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일부 주민들은 환경보전을 명분으로 반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곳이 저수 기능을 상실한 지 십년이 훨씬 넘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오히려 환경오염을 부추기는 쓸모없는 곳으로 전락할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혁신밸리 예정지로부터 10여㎞ 떨어진 전라북도 농식품인력개발원에서는 농민들이 스마트팜 운영과 새로운 농사기법을 배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인력개발원은 많은 수강생들이 몰려들어 빡빡한 교육일정을 소화하느라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팜과 관련해서도 청년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할 50여명의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들은 혁신밸리가 조성되면 임대형 스마트팜에 입주해 현장 전문가들의 기술지도와 컨설팅을 제공받게 된다. 막대한 초기자금이 필요한 스마트팜 사업의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추고 투자 위험도 줄이겠다는 의도에서다. 인력개발원 한편에 자리 잡은 유리온실에서는 파프리카·토마토·고추 등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론과 실습이 동시에 가능한 원스톱 서비스를 갖춘 셈이다.
스마트팜이란 기존 농업에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첨단 농업기술이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농촌 활성화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재배기술과 ICT를 접목한 스마트팜이 정체된 농업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미래농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생산성 향상은 물론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과 환경 부담 완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정부가 융복합 클러스터이자 혁신거점을 목표로 진행하는 농업 분야의 대표적인 국책사업이다. 2022년까지 전국에 4개소를 구축하고 이를 기자재나 식품·바이오 등 관련 기업 실증연구와 제품화가 가능한 스마트팜 실증단지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실증단지를 중심으로 기초부터 산업화까지 스마트팜 연구개발을 체계화함으로써 청년창업은 물론 기술혁신, 판로 개척이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역시 전라북도와 김제시가 지난해 말 치열한 경쟁을 뚫고 힘들게 따낸 사업이다. 그런데도 시민단체와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경단체는 습지 보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환경보전을 요구하고 있다. 농업용수 부족에 따른 지역 농가의 어려움도 환경단체가 내세우는 논리다. 김제시 측은 이에 대해 “백구 지지제는 1991년에 이미 용도 폐기돼 3분의1이 매립된 상태”라며 “그동안 공터로 남아 있던 곳이어서 오히려 재활용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습지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됐고 멸종위기종은 따로 이식계획까지 세웠다는 것이다. 농업용수 문제도 인근 금강 용수를 활용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혁신밸리가 들어서면 인근 농가에 심각한 영농피해를 줄 수 있다”며 “금강 용수 계획도 실효성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이자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반면 사회단체협의회는 “혁신밸리가 농촌 일자리 문제와 주민 소득 증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반대 주장은 백구 주민 전체의 의견도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둘러싼 갈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스마트팜에 대한 농민단체의 부정적인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일찍이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농업계 4대강 사업’에 빗대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성명서까지 내고 청와대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농산물 생산과잉을 불러와 가격 폭락과 농민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대규모 유리온실은 중소농가를 죽이고 대기업만 살찌울 것이라며 대기업 농업 진출의 통로로 활용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스마트팜은 몇 해 전에도 대기업 진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동부팜한농이 첨단 유리온실을 지으려다 지역 농민과의 갈등으로 철수했고 몇몇 대기업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현장 농민들 가운데는 찬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농민단체의 반발이 워낙 거세 감당할 수 없었다”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팔짱을 끼고 있는 바람에 개별 기업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마트팜의 실체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농민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경험이나 감에 의존하는 농사와 달리 과학영농을 통해 생산성 향상과 농작업 생력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현시점에서 농업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면서 “당국이 대화를 통해 농민들의 오해를 풀고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팜이 쇠락하는 농촌을 살리려면 무엇보다 과도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농민의 의식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투자비용 절감이나 장비의 안정성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선진국의 70% 수준에 머무르는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부품 호환성과 표준화를 통해 농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툭하면 가격 폭락으로 애써 키운 작물을 갈아엎는 농민을 위한 안정적인 판로 확보 대책도 시급히 마련돼야 할 과제다. 인력개발원에서 만난 한 교육생은 “우리 농업이 도약하려면 스마트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네덜란드처럼 농업이 부를 창출하는 어엿한 6차 산업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ss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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