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 요구를 충실히 따랐던 한전이 반기를 든 것은 섣부른 전기료 인하에 따라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행위로 고발당할 우려 때문이다. 한전 이사회가 정부 입맛대로 전기료 인하안을 의결할 경우 3,000억여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해 이사들이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한전 소액주주들은 탈원전과 전기료 인하 등 불합리한 정책에 따른 부담을 떠맡는 바람에 경영이 부실해졌다며 경영진을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전 이사들은 정부에 확실한 손실보전책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니 이 정부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배임죄가 결국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된 셈이다.
한전의 전기요금을 둘러싼 혼선은 이뿐만이 아니다. 초우량기업이었던 한전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고 올 1·4분기에도 6,299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래놓고 사회적 가치를 높였다며 경영실적 평가에서는 상위 등급을 받았다니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에너지 수급대책에서는 수요를 억제하겠다고 선언해놓고 선심성 요금 인하를 밀어붙이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정책 엇박자는 대안없는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앞으로 또 어떤 부작용이 터져 나올지 장담하기 어렵다.
전기료 개편안 보류는 탈원전에 대한 경고이자 불합리한 부담을 떠넘기지 말라는 절규다. 얼마 전 한국원자력학회 설문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7명이 원전을 확대하거나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탈원전에 대한 지지율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부담이 없도록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국민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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