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의 국가대표 심석희 성폭행 파문으로 체육계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쇼트트랙이 또 다시 성추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쇼트트랙 남자 국가대표 임효준이 동성 성희롱 파문에 휩싸이면서다. 현재 임효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25일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남녀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17일 진천선수촌에서 동반 암벽 등반 훈련을 했다.
당시 훈련 도중 임효준은 앞서 암벽을 오르던 후배 황대헌의 바지를 벗겼다. 황대헌은 극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코칭스태프에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알렸다. 장권옥 감독은 이를 연맹에 보고했다.
이 사건과 관련 신치용 선수촌장은 쇼트트랙 대표팀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남자 7명, 여자 7명 등 대표 선수 14명 전원을 한 달간 선수촌에서 쫓아내기로 24일 전격 결정했다.
한편 황대헌은 진천선수촌 내 인권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았으나 여전히 심리적 충격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황대헌의 소속사인 브라보앤뉴 측은 “당시 암벽 훈련 도중이라 손을 쓸 수가 없어 (하반신이) 무방비로 노출됐다”며 “여자 선수들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일이 벌어져 선수 스스로 수치심이 크고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청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빙상연맹 관계자는 “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이 사안에 대해 징계를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도 빙상연맹의 진상 조사를 통해 후속 대책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쇼트트랙은 동계올림픽의 우리나라 메달 종목으로 자리매김했으나 크고 작은 추문으로 수차례 물의를 빚었다. 지난 2월에는 남자 선수가 출입이 금지된 여자 숙소를 무단으로 드나들었다가 적발돼 이를 도운 여자 선수까지 모두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관련기사
이번 남자 선수끼리의 성희롱 사건은 과거와 달라진 성(性) 민감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심한 장난’ 정도로만 여기다가 비난을 자초했다는 게 체육계의 판단이다. 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빙상연맹의 진상 조사를 기초로 체육회가 후속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날 퇴촌 예정인 대표팀은 내달 25일쯤 다시 입촌할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훈련을 이어갈 예정이다. 임효준에 대한 징계 여부는 다음 주 빙상연맹 관리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한편 임효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소속사를 통해 황대헌에게 거듭 사과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임효준의 소속사 브리온컴퍼니는 “암벽 등반 훈련 도중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임효준이 조금 과격한 장난을 한 것 같다. 장난기 어린 행동이었지만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면 분명 잘못한 일이다. 황대헌 선수에게 거듭 사과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임효준은 극복의 아이콘이자 불운의 아이콘이다. 최고의 기량과 재능을 갖췄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좀처럼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수영선수로 활동하다 고막이 터져 수술을 받게 된 후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뒤 곧바로 천재성을 발휘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2살 위 형들을 제치고 종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번번이 부상에 무릎을 꿇었다. 처음 몸이 상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다. 정강이뼈가 부러져 1년 반 동안 아이스링크를 떠났다. 성장해야 할 시기를 놓쳤지만, 임효준은 쇼트트랙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향인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코치와 생활하며 불굴의 의지를 다졌다.
복귀 후 국내 쇼트트랙 중등부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며 다시 정상에 서는 듯했다. 그러나 고교 때 다시 한 번 쓰러졌다. 발목이 심하게 돌아가 6개월을 허송세월했다. 이후에도 발목 인대가 끊어지고 손목이 부러지는 등 좌절과 재기를 반복했다.
무려 7차례나 수술대에 올랐지만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도전했다. 지난 2017년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에 참가했다. 4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전체 1위로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