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1월 15세의 앳된 소년이었던 김연수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와 교토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1921년 조선인 최초로 교토 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뒤 친형인 인촌 김성수가 주도해 만든 경성방직의 2대 사장이 됐다. 이후 그는 서울 영등포는 물론 국경 너머 만주까지 사업장을 늘리면서 한국 최초의 거대 기업 집단을 일궜다.
신간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전역에 흩어진 7개 제국대학을 나온 조선인 1,000여명의 행적을 되짚는다. 근대 일본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제국대학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엘리트를 양성했다. 저자인 정종현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약 10년에 걸친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조선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사법·행정·경제계를 장악한 엘리트의 뿌리를 추적한다.
경성방직을 경영한 김연수는 ‘제국대학 졸업생’이라는 타이틀과 유학 시절 쌓은 인맥을 총동원해 사업을 확장했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에 체포됐으나 재판부는 “결코 민족정신을 버리지 않은 사업가”라는 이유를 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가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하려고 노력한다. 장기간의 연구로 길어올린 사료와 물증에 바탕을 두고 민족의 암흑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김연수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본의 비호 아래 기업을 키운 친일 사업가’라는 지적과 ‘정상적인 방식으로 민족 기업을 일군 사례’라는 평가가 공존한다는 사실만 언급하면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1,000명이 넘는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친일 행위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한 집안의 자제들이었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 지식인들도 있었다. 윤동주의 사촌인 송몽규는 교토 제국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뒤 조선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가 해방 직전인 1945년 3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저자는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라도 제국대학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의 실상을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만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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