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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숨 책임지실래요?" 비오는 날 배달 재촉은 심하잖아요

장마철 배달 라이더들의 속앓이 사연 들어보니

주문량 많아지지만 배달은 두배 이상 느려져

박스 젖었다고 환불하는 사례도 비일비재

'빨리빨리' 압박에 오토바이 사고 5년새 급증

사고시 라이더들이 손해 물어주는 경우도 많아

비 예보가 있었던 지난 주말 서울 합정역 인근. 후텁지근한 날씨에 비옷까지 걸쳐입은 배달 라이더가 보도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 강신우 기자




# “안 그래도 어두운데 사람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맨홀 뚜껑이라도 밟으면 바로 미끄러져요. 비 올 땐 배달 가기가 좀 두렵습니다.” (문OO, 37살, 배달 대행업 종사 경력 2년)

#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비 올 땐 주문이 더 밀려있을 거잖아요, 그런데도 빨리 배달해달라고 닦달하는 손님 보면 솔직히 짜증 나죠.” (석OO, 34살, 배달업 종사 경력 3년)

장마철 접어들며 잦아진 비 소식에 한숨이 늘어난 이들이 있다.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 곳곳 음식을 나르는 배달 라이더들이다. 국내 2,5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시장 규모도 20조 원에 달할 만큼 ‘배달음식 전성시대’가 왔지만, 정작 배달 라이더들은 일부 몰지각한 손님들 행태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차례 소나기가 내렸던 지난 주말(21일) 낮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배달대행 업체를 찾았다. 길에서 자주 보던 빨간색 박스를 단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대여섯 명의 남자 배달 라이더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콜(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에게 장마철처럼 비 오는 날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연을 들어봤다.

서울 서대문구 한 배달대행업체에서 만난 배달 라이더들. 왼쪽부터 문 씨와 석 씨. 맨 오른쪽에 앉아있는 라이더는 최근 다리를 다쳤다. / 강신우 기자


■ 배달업 경력 2년차, 37살 라이더 문 씨

“비 올 때 배달하면 별의별 일 다 생겨요. 열 명 중 두 명 정도는 음식 포장이 젖었다고 도로 가져가라 그래요. 솔직히 아무리 조심해도 안 젖을 수가 없는데…”

문 씨는 비 올 때 특히 조심해서 오토바이를 운전한다고는 하지만 경미한 미끄럼 사고는 항상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에 배달 가면 인도 쪽으론 못 지나다니게 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주차장 바닥 코팅이 빗물과 만나면 훨씬 미끄럽다. 도로 위에선 맨홀 뚜껑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공사장 앞 지날 때 모래를 밟는 순간 미끄러지기 일쑤다.

문 씨는 한 번은 20만 원어치 피자 값을 물어낸 적도 있다고 했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피자가 박스 안에서 한쪽으로 쏠려 모양이 흐트러졌단 이유였다. “너무한다 싶죠? 이런 환불 건이 생각보다 많아요.”

배달 대행업체 소속이다 보니 배달 사고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라이더가 떠맡는다. 사무실이 학교 근처여서 주문액 규모도 상당해 한 번 사고가 나면 그 날 번 돈은 다 날리는 셈이다. 문 씨는 야간 배달이 가장 두렵다. 안 그래도 어두운데 술 취한 사람들이 골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많다. “빗길에서 오토바이는 브레이크 밟는 순간 바로 미끄러져요. 스스로 더 조심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위험하죠.”

■ 배달업 경력 3년차, 34살 라이더 석 씨

“비 올 땐 천천히 와달라고 해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자기만 생각하고 왜 빨리 안 오냐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한번은 제가 화를 낸 적도 있어요. ‘사고 나면 책임지실 거예요?’라고요.”

배달 라이더 석 씨(34)는 일하다 다칠까봐 사비를 들여 전신 보호장비를 구매해 입고 있었다. / 강신우 기자


석 씨는 빗길 속에서도 빨리 배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늘 있다고 전했다. 요즘은 배달앱에 별점 후기를 매기게 돼 있는데, 만약 한 명이라도 배달이 느리다고 적으면 그 가게는 매출에 직격타를 입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난은 고스란히 라이더들에게 쏟아진다.

없는 사실까지 부풀려 허위로 리뷰를 남기는 ‘진상’ 고객들 때문에 골치 아픈 적도 많다. 한번은 다른 주문 건이 밀려있어 빨리 가야 하는 상황에서 주문자가 너무 늦게 나와 한마디 했더니 욕을 했다며 악평을 남긴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식당 사장이 전화 와서 따지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석 씨는 이 같은 일을 당하기 싫어 최근 헬멧에 블랙박스까지 사비로 사서 달았다. 교통사고 때 부상을 막기 위해 산 전신 보호장구까지 포함하면 50만 원 가까이 개인 돈을 썼다.

■ “장마철 최악의 알바는 배달” 설문 6년 연속 1위

이처럼 장마철 배달 일은 가장 기피하고 싶은 ‘최악의 일자리’로 아르바이트 구직자들 사이 악평이 자자하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사이트 알바몬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장마철 최악의 알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구직자들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6년 연속 장마철 최악의 일자리로 꼽았다. 각종 사고에 대한 위험(35.9%)이 주요 이유였다. 응답자 3명 중 1명(36.4%)은 평소보다 장마철 업무 강도가 훨씬 세다고 입 모으기도 했다.

길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배달 라이더들. / 강신우 기자


배달 라이더들이 직면한 위험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을 분석한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천시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총 2,008명, 부상자는 12만 6,555명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특히 최근 10년래 가장 많은 수의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12일 발표한 ‘오토바이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1만 5,032건으로 2017년에 비해 9.5%나 급증했다. 사망자도 한 해 410명이나 발생했다. 지난 1년간 전체 교통사고는 0.4%, 사망자 수는 9.7% 감소한 데 비해 유독 오토바이만 무서운 질주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는 배달앱 시장 확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최근 배달대행 업체들은 라이더를 모집하면서 ‘위험수당 지급’을 내세운다. 보통 라이더들은 배달 1건당 3,000원의 수수료를 받는데, 눈이나 비가 올 땐 건당 500원의 위험수당을 받는다고 안내한다. 10분 이상 멀리 배달 갈 때는 500원을 더 받기도 한다. 일부 업체는 라이더를 위한 산재보험과 바이크보험도 들어놓고 있다고 직원 모집 글에서 홍보하고 있다.

배달 일만 30년 이상 했다는 50대 베테랑 라이더 박 씨. / 강신우 기자


얼핏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배달 라이더들이 이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신고된 오토바이 수는 총 216만 6,000여 대로 이중 5%(12만 3,000여 대)만이 종합보험에 가입해 있다. 배달일만 30년 이상 했다는 50대 베테랑 라이더 박 씨는 “위험수당으로 건당 500원을 받긴 하지만 실제 위험한 거에 비해선 적은 금액”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앞서 언급한 문 씨와 석 씨가 소속된 곳은 따로 위험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일부 프랜차이즈 매장에선 사고 위험 때문에 우천 시 배달을 금지하기도 한다. 비 예보가 있던 지난 주말, 서울 합정역 부근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배달주문을 막아뒀다. 맥도날드 주문 앱에서는 “기상 악화로 배달 불가”라는 안내가 떴다.

라이더 문 씨는 “비 올 때는 사람들이 밖을 안 나가니까 주문량이 20%에서 50% 정도 더 많아지는데, 배달 시간은 두 배 이상 늦어진다고 보시면 된다. 저희도 조심해서 배달할 테니 주문하신 분들도 저희 입장을 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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