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됐다. 모든 것들이 축축해지는 계절은 축축한 음악으로 견뎌야 한다.
흑인 재즈 뮤지션의 삶과 사랑을 다룬 ‘모 베터 블루스 (Mo’ Better Blues)’는 “억압에는 폭력으로 맞서라”는 할리우드의 ‘대견한 싸움닭’ 스파이크 리의 1990년 작품이다. 얼마 전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덴젤 워싱턴이 천재 트럼페터 블릭 길리엄으로, 이제는 액션배우로 더 익숙해진 웨슬리 스나입스가 그의 절친인 색소폰주자 섀도우 헨더슨으로 나온다.
재즈의 명가 마살리스 가문의 장남인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이끄는 쿼텟(피아니스트 케니 커크랜드, 베이시스트 로버트 허스트, 드러머 제프 워츠)과 트럼펫 주자 테렌스 블랜차드가 연주하는 재즈 넘버들이 영화 전체에 흐른다. 재즈 작곡가이자 베이시스트인 스파이크 리의 아버지 빌 리(본명이 윌리엄 제임스 에드워드 리 3세로 다소 길다)가 직접 만든 메인 테마 ‘Mo’ better blues’는 재즈를 다소 낯설게 느껴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테렌스 블랜차드가 만들어 낸 앙상블이 얄밉도록 깔끔하다.
트럼펫 대가 윈튼 마살리스의 한 살 터울 형인 브랜포드 마살리스는 스팅의 명반 ‘Nothing Like the Sun’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통섭을 통해 현대 재즈의 지평을 넓힌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즈계의 대부로 추앙 받던 마일즈 데이비스에 의해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아 더욱 주목을 끈 테렌스 블랜차드는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동향인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났다. 동네 친구들과 보컬 그룹을 조직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8살 때 트럼펫을 잡았다. 허비 행콕, 케니 가렛 등 당대를 대표하는 거장들과의 작업으로 화제를 모은 그는 스파이크 리의 영화 음악에 참여하면서 듀크 엘링턴 이후 가장 성공한 재즈 영화 음악 작곡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천형의 땅’ 디프사우스(Deep South)에서 시작해 미국 대중음악사의 물줄기를 바꾼 재즈의 음률을 이 눅눅한 계절에 느껴보자./박문홍기자 ppmmhh68@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