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4개월 만의 만남이자 예정에 없던 파격적인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이날 판문점에서 53분간 사실상 단독 회담을 했다.
양 정상은 이 자리를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하며 중단됐던 비핵화 실무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대북 경제 제재와 관련해서도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해제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미 협상의 ‘동시적·병행적 이행’을 언급한 가운데 미국의 협상 전략이 다소 유연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양 정상은 특히 이번 회담을 통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톱다운’의 동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을 과시했다. 실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북미 협상은 양 정상 간 ‘친서 교환’을 통해 다시 불씨가 살아났고 이번 ‘깜짝 만남’을 통해 다시 속도가 붙었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북미 회담을 주선하며 중재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드라마의 ‘조연’을 자처하며 북미 간 회담을 물밑에서 조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향해서 “이렇게 평화적으로 많은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문 대통령 덕분”이라며 “북미 대화에는 문 대통령도 긴밀히 관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실무협상단의 면면이 새로 꾸려질 것임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팀이 꾸려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미 팀을 갖고 있고, 양측이 선호하는 상대들과 얘기하기로 한 것”이라며 “과거 상대보다 새로운 상대와 더 좋은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강경 네오콘’을 대표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향후 협상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월 외신 인터뷰에서 볼턴을 겨냥해 “멍청하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건 대표가 (실무팀의) 대표가 될 것”이라며 “비건 대표는 전문가인 동시에 한국과 북한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협상을 서두르지 않고 ‘올바른 협상’을 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은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봐야 알겠지만 우리는 속도보다 올바른 협상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서두르면 항상 실패를 하게 된다”며 이란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실무협상은 재개하겠으나, 미국이 쉽게 양보하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번 만남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협상에 다시 나설 적당한 명분을 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회담을 제안하고 판문점까지 찾아옴에 따라 김 위원장은 북한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도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실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저희는 사실 (단거리미사일을) 미사일 실험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저희가 관심 있는 것은 탄도미사일뿐”이라며 “북한은 탄도미사일도, 핵실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일본의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녀 어려움을 겪었고 하와이와 괌을 둘러싼 긴장 등 전 세계에 긴장이 넘쳤다”며 “저와 김 위원장도 거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날 남북미 정상 간의 만남과 북미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동시에 이뤄진 것에 대해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북미협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대담한 여정이 좋은 결과를 맞을 수 있도록 문 대통령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회동을 마친 후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기자들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아주 과감하고 독창적 접근 방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와 우리 남북 7,000만 겨레에 큰 희망을 줬다”면서 “방금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양측이 실무자 대표를 선정해 이른 시일 내 실무협상을 돌입하기로 한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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