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강렬한 만남이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차갑게 돌아섰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개월여 만에 판문점에서 조우했다.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는 파격적인 장면이 생중계됐다. 냉전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만들어졌다.
자연스레 지난해 판문점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4월27일 오전9시28분 판문점 군사분계선. 문재인 대통령은 북쪽으로 향했고 김 위원장은 남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남북 정상이 손을 꽉 잡았다. 문 대통령이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따듯하게 손을 붙잡고 문 대통령을 북쪽 땅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뜨겁게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탔다. 협상이 결렬 위기를 맞은 것만 수차례다.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냈으나 싱가포르회담 이후 북미 협상은 다시 진척되지 못했다.
특히 올 2월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이한 협상이었다.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만난 북미 정상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8개월 동안 북미 실무협상팀의 준비는 턱없이 부실했다. 게다가 김 위원장의 열차가 하노이로 향할 때, 미국 의회는 트럼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며 트럼프의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아 놓았다. 워싱턴의 분위기에 예민한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협상 결렬의 카드를 던지고 유유히 떠났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로드맵도 없이 제재완화에만 희망을 걸다가 빈 손으로 돌아갔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이날 다시 만난 것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의미가 있다. 미국 대통령이 정전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만난 것 자체가 역사적인 일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 제안에 김 위원장이 응한 모양새는 달라진 북미 간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땅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조연’을 자처하며 물밑에서 북미 간의 만남을 조율한 문 대통령의 활약이 눈부셨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는 파격적 만남이 더 이상 공허함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그 저변에 도사린 냉혹한 현실은 우리가 누구보다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북미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지금까지 서로의 입장을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 강경 네오콘들이 여전히 미 조야에 가득하고 북한 역시 도발의 발톱을 숨기고 있다. 치열하고 구체적인 실무협상과 ‘비핵화 로드맵’만이 이 긴 여정을 이끌 유일한 해법이며 북한에 현실감각을 깨우쳐 줄 어려운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정상 간의 톱다운이 협상의 불씨를 살리지만 마침표는 찍지 못한다./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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