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문점 북미정상회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파격 이벤트였다. 워낙 급작스럽게 이뤄진 만남이어서 에피소드도 많았고 회동 중 작은 소동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잘 짜인 한 편의 쇼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전율을 남긴 이번 만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짧은 트윗에서 시작된 우발적 이벤트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자칫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북핵 협상 과정에서 이런 즉흥 제안이 큰 변곡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그의 일정에 대한 여러 예상이 쏟아져나왔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판문점에서의 북미 회동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더 지배적이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외교 안보 채널을 동원해 알아보니 DMZ(판문점) 회동은 어렵고 전화 통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 후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자 “기분 좋게 예측이 빗나갔다”고 해 가십 거리가 됐을 정도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 사이에서는 북한에 대한 단정적인 예측은 피하라는 말이 금언처럼 회자된다. 과거 6자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 등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통일부의 한 고위관료는 “북한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절대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회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예측이 매번 빗나갔던 경험을 통해 터득한 나름의 실전 진리였을 것이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후 위기→합의→파기 패턴을 되풀이해왔다.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과 여러 협상이 진행됐지만 북한은 특유의 벼랑 끝 전술과 예측할 수 없는 돌발 파기 행동으로 북핵 위기 온도를 높여왔다. 힘들게 성사됐던 1994년 제네바합의는 5년 뒤 북한의 핵 개발 재개로 이어졌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고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북한은 2006년 핵 실험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김정은 정권에서도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계속됐고 이복형 김정남의 살해 사건까지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움직임이 매번 일반적인 예측을 벗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북핵 문제와 연관된 변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주변 관련국 간 이해관계가 매 협상 이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경제 문제나 국제사회의 역학관계가 함께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북핵 문제는 미국과 무역전쟁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미국 대선전 영향이 우려되는 러시아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국제관계의 미묘한 파장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려는 주변국과 북한·미국의 힘겨루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면 결과는 럭비공처럼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어 나갈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예측 불가능의 정점에 올라 있는 정치 지도자의 협상 스타일까지 겹쳐 북핵 이슈는 향후에도 단정적인 예측을 불허할 가능성이 크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쇼는 현실과 다르다. 쇼가 현실인 곳은 쇼가 진행되는 무대 위에서일 뿐이다.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트위터 행보에 따른 북미 3차 정상회동에 관객들은 감탄사를 쏟아낼 수 있지만 쇼가 끝난 뒤 냉정한 일상 속에서는 북핵이라는 공포의 대상을 차가운 머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가 없다면 북핵 협상은 그저 화려한 정치 쇼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던 북핵 6자회담에서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 떠오른다. 북핵 전문가들은 대부분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다. 북핵을 둘러싼 가장 많은 예측 가운데 하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북한에 대한 이 예측만은 제발 꼭 빗나갔으면 한다. 핵이 없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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