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세계 최고 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1(F1)’을 주관하는 협회(FIA)가 환경 이슈로 골머리를 앓았다. 굉음 등 소음공해와 온실가스배출 문제가 대회 때마다 제기됐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경기중단을 주장하는 등 거센 비난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대책을 고민하던 2012년 협회 내부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2년 뒤부터 피트레인(pit lane)에서는 머신(경주용차)들이 전기모드로만 달리게 하자는 것.
하지만 대회 운영사인 F1M은 “위험하다”며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피트레인은 참가팀 핵심인력들이 모여 있는 사령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차를 수리·세팅하는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렇게 사람들이 수시로 다니는 지역인데 전기모드로 지나면 너무 조용해 사람들이 차량 진입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는 게 운영사의 주장이었다.
FIA는 이에 굴하지 않고 얼마 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아예 전기차만 이용하는 레이싱 대회를 만들자는 것. 이래서 탄생한 게 F1의 전기차 버전인 ‘포뮬러E(FE)’ 다. ‘E’는 전기(Electric)·에너지(Energy)·환경(Environment)·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친환경에다 재미까지 있는 경기라는 얘기다. 첫 대회는 2014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FI이 1950년 영국 실버스톤에서 개최됐으니 이보다 60년 이상 늦은 셈이다.
F1이 내연기관의 힘을 겨룬다면 FE는 배터리가 핵심이다. 초창기에는 배터리 성능이 떨어져 레이스 도중 차를 바꿔 타기도 했다. 지금은 배터리 용량이 2배에 달해 단번에 45분 이상의 레이스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전기차 머신의 경우 최대출력은 250㎾(약 335마력), 최대스피드 시속은 280㎞에 이른다. 폭발적인 엔진 배기음에 시속 300㎞ 이상의 스피드를 느낄 수 있는 F1에는 아직 못 미친다.
대신 ‘고요한 폭풍’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소음이 적은 환경에서 직각코너·180도코너링 등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을 구경할 수 있다. 이처럼 화끈한 전기차 레이싱을 서울 잠실 일대에서 만끽할 수 있게 됐다. 6회째인 FE 대회가 내년 5월3일 잠실종합운동장과 그 일대에서 펼쳐진다는 소식이다. 대회 성공과 함께 우리 친환경 전기차 기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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