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 중소상인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상인들 발 아래엔 유니클로, 혼다, 데상트, 미쯔비시, 아사히, 토요타, 소니, 마일드세븐 등 일본 브랜드 로고가 부착된 박스가 있었죠. 이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이 일본 식민지인줄 아느냐”고 분노하며 박스들을 발로 짓뭉갰습니다. “과거사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없는 일본 정부를 향해 던져지는 작은 돌멩이가 되고자 한다”는 외침도 이어졌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부품 수출 규제로 한국경제를 압박하고 나서자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거세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수수료를 물고도 취소했다”며 일본 여행 취소표 인증샷이 올라오는가 하면, 일본 제품 블랙리스트도 활발히 공유되고 있죠. 나아가 일본 출신 연예인들을 퇴출해야 한다고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잊을 만 하면 불 붙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그 역사가 깊습니다. 1920년대 일제의 경제 수탈과 민족 말살 정책에 항거해 벌였던 ‘물산장려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죠. 국산 제품을 써서 민족 자본을 만들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조선을 다시 세우자는 취지의 민족자립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호응은 있었으나 일제 탄압으로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은 꾸준히 역사 왜곡과 망언을 이어왔죠. 그때마다 시민단체 중심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불이 붙었습니다. 지난 2001년 역사 왜곡이 심각했던 일본 우익 단체의 ‘후쇼사 교과서’ 파동이 대표적입니다.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잠깐 훈풍이 불었던 한일 관계는 이 일을 계기로 경색 국면을 맞았죠.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과 함께 후쇼사 교과서 검정 통과로 우리나라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일본 담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등 일본 제품 화형식을 치르거나, 일본차 안 타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여졌습니다. 당시 한 대형마트 통계에는 일본산 맥주 판매량이 한 달 만에 35.6% 떨어졌고, 렉서스와 혼다 등 일본 수입차 브랜드의 국내 판매도 30%가량 급락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1년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반일 감정을 또 한 번 건드립니다. 2013년에는 회원 수 600만 명의 골목상권살리기 소비자연맹이 3.1절을 기점으로 일본 제품 사진에 불매 스티커를 붙이는 등 대대적인 일본 제품 취급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일제 불매운동’으로 전해지는 사건이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시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미쓰비시 자동차의 경우 불매운동과 판매 부진 등으로 국내 철수설까지 나온 방면, 기린맥주의 경우 새로운 맛을 찾는 국내 소비자들의 수요에 폭염까지 맞물리며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전해졌습니다.
■미국·중국제품 불매운동은? 일본 제품으로 시선 돌리는 풍선효과도
물론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불매운동도 있었습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반미 감정이 고조되며 ‘미국제품 불매’,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이 거세게 일었는데요. 누리꾼들 중심으로 ‘맥도널드 햄버거 안 먹기’ ‘코카콜라 안 마시기’ ‘007영화 안보기’ 등 ‘안 먹고 안 보고 안 쓰기’를 실천하는 네티즌(누리꾼) 미제품불매 ‘3안운동’이 펼쳐졌습니다.
그 해 연말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 때 안톤 오노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 사건은 대미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나이키, 월마트, 외식 프랜차이즈 TGIF 등 모든 미국 업체들이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었죠. 다만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의 매출이 실제로 크게 타격을 입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타벅스는 2002년 말 시장 점유율 40%로 업계 1위를 달성했습니다.
중국을 향한 불매운동도 많았는데요. 1998년 포르말린 통조림 파동, 2000년 납 꽂게 파동,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중국산 분유 파동 이후 일본산 분유 판매량이 판매처에 따라 40%에서 최대 3배까지 증가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죠.
■일본 제품 불매운동, 얼마나 타격 입혔을까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벌어진 많은 불매운동들은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오히려 직구 트렌드 등으로 글로벌 쇼핑 문턱이 낮아지면서 불매운동을 벌였던 일본제품들의 소비량은 그동안 꾸준히 늘어왔죠. 올 상반기 일본 자동차 브랜드는 21.5%(2만 3,482대) 점유율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한국인 일본 여행객은 지난해 754만 명으로 5년 전에 비해 3배나 증가했습니다. 일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의 최근 3일 안팎의 매출이 전년대비 17% 급감했다고 하지만, 국내 1위 SPA 브랜드 위치가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 같은 약소국이 불매운동해도 전혀 타격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어느 상인의 말처럼 ‘작은 돌멩이’를 던져보려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본에 항의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자 또한 올 여름휴가 가족여행을 일본으로 계획했다 마음을 접었습니다. 2019년에 벌어지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과연 어떤 파장을 가져올까요?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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